리뷰사이트의 우울 by 크로이츠

내가 일본에서 나오는 신간 라이트노벨을 적극적으로 체크하고 읽기 시작했을 무렵, 많이 참고했던 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메이저한 라이트노벨 리뷰사이트로 꼽히고 있는 곳인데, 당시는 라이트노벨 전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라이트노벨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라이트노벨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전문적으로 라이트노벨을 다루는 사이트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그래봤자 겨우 5~6년 전이지만), 그 사이트처럼 재미있어 보이는 라이트노벨들을 많이 소개해주는 곳은 무척 귀중했다.
그런데 라이트노벨 관련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갈수록 라이트노벨 사이트로서의 지명도가 높아지고, 언제부터인가 출판사나 작가와의 친분도 생기더니 점점 사이트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라이트노벨 사이트로서의 규모는 훨씬 커졌지만, 한 달에 책을 수십 권 씩 소개하게 되면서 리뷰사이트로서는 무척 재미없는 곳이 된 것이다.
이책 저책 다 소개하면서 이건 이래서 재밌습니다 저건 저래서 좋습니다 하고 모조리 칭찬만 해버리니, 운영자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추천하고 있는 건지 그냥 립서비스로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리뷰사이트로서의 신뢰도가 떨어져버린 셈이다.
사이트 운영자 본인은 이런저런 매체에 라이트노벨 관련글을 기고하면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원래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분석하거나 깊이 있게 파고드는 타입의 리뷰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정보제공이나 흥밋거리 수준의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모 라이트노벨풍 추리물이 문고화되었을 때 권말의 해설 파트를 담당했다가 그 엉뚱한 내용 때문에 빈축을 사는 등 가끔 미묘한 행동도 해서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한때 이 사이트에 많이 의지했던 나로서는 좀 아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님이 신인상 심사위원을 맡을 만한 사람인가요, 라고 삐딱하게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하면, 리뷰사이트가 업계와 너무 가까워지면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이글루스에만 해도 기업에서 협찬 받아 홍보성 리뷰를 쓰는 ‘메이저’들이 수없이 많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출판사에서 책을 자주 받는 편이지만 받은 책에 대해서는 감상도 안 쓰도록 하고 있다(어차피 요즘은 개별 작품의 리뷰 자체를 잘 안 쓰는 편이지만). 공짜로 받은 시점에서 이미 리뷰어로서의 공정함은 손상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동안 뉴타입에서 NT노벨 리뷰 코너를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홍보성 리뷰긴 하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짚어주면서 쓰려고 했었는데, 어느날 한 작품의 리뷰를 썼다가 작가의 태클이 들어와서 잡지에 싣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원래 잡지에 리뷰를 싣기 전에 일본쪽으로 보내 내용을 체크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리뷰에서 작품의 단점을 지적하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한 부분은 단점이지만 그래도 ~~~하기에 뛰어나다’라는 식의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리뷰는 잡지에 실리지 못했고, 그 뒤로는 단점을 언급하지 않는 리뷰만 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고역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작품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쓰겠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품이나 아예 모르던 작품에 대해 홍보성 리뷰를 쓰는 건 나로서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그뒤에도 시드L노벨에서 서평을 의뢰받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Missing』과 『안녕 피아노소나타』만 리뷰를 썼을 뿐 다른 작품은 쓰지 않았다. 진정성이 없는 리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결벽증적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리뷰어는 기업의 홍보알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업의 홍보전략으로서 블로그를 이용하는 것 자체는 긍정하는 편이지만, 협찬 받은 물건에 대해서 공정한 리뷰인 척 홍보기사를 쓰는 블로거는 리뷰어로서 상당히 저질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어느 회사에서 제공받은 물건이라고 명확히 표시해놓은 경우는 제외해야겠지만). 그게 유급이든 무급이든.
일본의 메이저한 라이트노벨 리뷰사이트들은 출판사나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하다!」등 업계와의 유착 때문에 여러모로 재미없게 되었지만... 한국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여간 그래서 제가 요새 리뷰를 잘 안 쓰는 겁니다 여러분!

핑백

  • 잠보니스틱스 : 오늘의 분방한 잡동사니 2009-11-08 09:5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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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네오바람 2009/10/23 00:22 # 답글

    뭐 그게 문제긴 하죠 출판사 입장에서는 파워 리뷰어가 홍보에 가장 큰 도움이 되니까 말이죠. 결국 어쩔 수 없는 문제긴한데 절대적으로 중립적으로 리뷰 사이트 운영하는건 진짜 힘들것 같더군요
  • 그란덴 2009/10/24 07:46 # 삭제

    그러니까 그게 참 웃긴거지 -_-; 정작 감상을 하는 사람의 예리한 눈썰미로 쌓인 안목을 요구하면서도 그 안목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춰 바꾸길 바라니까.
  • 아르니엘 2009/10/23 00:27 # 답글

    훌륭한 결론입니다!
  • 2009/10/23 00:2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rumic71 2009/10/23 00:36 # 답글

    뭐 한국에서는 어용일 할 각오는 해야죠.
  • 時作 2009/10/23 00:36 # 답글

    동감입니다. 협찬받아서 진행하는 주례사식 리뷰를 보면 같은 소비자가 쓴 리뷰를 믿기 쉬운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사기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많이 꺼려지곤 해요.
  • 잠본이 2009/10/23 21:28 #

    주례사식이라 하니 이런 상황이 떠오르는군요.

    '독자는 작품을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것이며~'
  • 2009/10/23 01: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Silver 2009/10/23 01:20 # 답글

    그렇군요... 잘이해햇습니다.
  • 요르다 2009/10/23 01:41 # 답글

    진심 공감합니다. 그런데 일본 작가의 태클로 리뷰를 못올렸다는 부분은 정말 당황스럽군요. 좋은 소리든 쓴소리든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되어야 할 텐데... 하기야 뭐 이사람 저사람 있는 법이고 그렇기에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 인간♡실격 2009/10/23 02:11 # 답글

    크로이츠_언니님의_업계인_인증.txt
    이라는 건 농담이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자신과 같은 '일반인'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신뢰하는 것인데, 그렇게 공들이다 보니 저런 협찬(..)을 받게 된 것일 텐데, 그걸 이용하면 신뢰성에 상처가 가는 거니까 말이죠. 공적이라고 할법한 채널이 별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노력을 계속하기 어려우니, 어느 정도 보상을 받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그 내용이 맘 편하게 쓰는 것관 조금 다르겠지요.

    저도 [넌 리뷰에서 안 좋은 이야기는 안 하잖아?]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고민중입니다. 이상하다……. 나름 심하게 평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은데 ㅠ_ㅠ
  • 이네스 2009/10/23 02:49 # 답글

    좋은말씀입니다!
    아무래도 서로 짝짜꿍이 맞으면 소비자 입장에선 영 그러니까요. ㅠㅠ
  • 시오 2009/10/23 08:58 # 답글

    그래도 전 크로이츠 님 리뷰가 읽고 싶어요....(+ 저도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데 안될까요 << 안되면 오빠나 형님이라도.... ;; )

    그런데 비판없는 리뷰가 무슨 의미가 있죠....
    개인적으로 단점을 언급하지 않고 계속 칭찬만 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리뷰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메이져라고 할만한 리뷰사이트가 있을까요? 네이버 NT카페나 찾아보지 않거든요. 거기다 제가 신뢰하는 신뢰하는 사람의 리뷰고, 커뮤니티의 리뷰가 아니라.

    "공짜로 받은 시점에서 이미 리뷰어로서의 공정함은 손상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건 찔리네요. 렛츠리뷰 몇번이고 쓰는 입장이라...; 비판할 점이 있으면 앞으로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cign 2009/10/23 09:05 # 삭제 답글

    그냥 EDGE처럼 잔인하게 주세요.
  • 격화 2009/10/23 09:08 # 답글

    여기선 결론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왠지 변명같지만...
  • 스펙터 2009/10/23 11:47 # 답글

    리뷰라는 게,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절대 이해관계가 얽히면 안된다는 문제가 있죠.
    그런데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잖아요... 그 둘이 얽혀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리뷰를 볼때, 장점보다 단점에 주목하는 성격이라(도저히 생리에 안맞는 단점을 보유한 작품은 읽는 게 무리라서), 칭찬일색인 리뷰는 아무래도 꺼리게 되더군요.
  • 리칼리스 2009/10/23 12:15 # 답글

    쵸큼 씁쓸하네요... ㅇ>-<
  • Rain 2009/10/23 14:26 # 답글

    한때 한국판도 조금 나왔던 게임비평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위에서 지적한 이유로 광고를 전혀 게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름 유명했지요.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리셋⁴ 2009/10/23 16:02 # 답글

    공짜로 받고 맘대로 써주시면 됩니다(...)

    맘에 안들면 안주겠지만, 주 수입원도 아니니 그 정도 배포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역시 세상, 맘편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말만 쓰는 리뷰는...솔직히 말해 "짜증난다"는 느낌이에요. 예전에 비판적 논조가 마음에 들었던 게임잡지가, 칭찬만 하기 시작하면서 실망하고 구독을 중단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 방랑이야기꾼 2009/10/23 17:07 # 답글

    냐하...리뷰를보기힘든이유가이런곳에(쓴웃음)!!! 머 그래도 크로이츠님의 리뷰를보고 산작품은 대체로 재미있게보고있으니까 좀더써주셨으면...하는건 제이기적인망상(후다닥)
  • 레드진생 2009/10/23 17:40 # 답글

    역시 현실에 공략신 사이트와 같은 곳은 있기 힘들겠죠(쓴웃음)
  • 위노 2009/10/23 17:57 # 답글

    솔직히 크로이츠님의 리뷰가 저의 구매목록에 상당한 영향을 줬죠...
  • 원생군 2009/10/24 01:38 # 답글

    공감갑니다..., 그렇게 가면 이제 마음놓고 볼 수가 없게 되죠...

    그리고 또 고독하게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나서고...
  • zzz 2009/10/24 11:48 # 삭제 답글

    이 사이트에서 만이라도 많은 리뷰를 써주시길 책본편보다 오히려 크로이츠님의 리뷰가 더 재밌던 적도 있고 책을 살때도 일단 여기서 검색해보고 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 뱅어포 2009/10/24 17:11 # 삭제 답글

    창작자와 비평가의 관계는 역시 애매하군요 ㅡㅡ;; 특히 돈이 관련되면(...)

    그래도 리뷰어들도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_써서_먹고_살려면_어쩔_수_없지.jpg와 마찬가지로 리뷰_써서_먹고_살려면.... OTL
  • 작가 2009/10/26 09:09 # 삭제 답글

    다 필요없고 존내 까는게 짱!!
  • kurame 2009/10/26 11:35 # 답글

    사실 업계 입장에서는 좋은 리뷰어를 마케팅에 이용하는것이 현명한 방법이긴 한데 거꾸로 그것이 좋은 리뷰어를 좋지 않은 리뷰어로 만들어 버리니...모순된 구조라는 걸까요. 이런 시스템자체를 바꿀 방법은 제 머리로서는 생각나지 않으니, 결국은 리뷰어 개인의 도덕심...이랄까 자존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또 그게 쉽지가 않은 게 사실이죠.
    결론은 안빈낙도입니다! 리뷰어는 안빈낙도의 태도를 가져야 해요! (...)
  • 幻夢夜 2009/11/04 15:21 # 답글

    그 작가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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