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 츠카사의 두 번째 라이트노벨인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는 기획 과정에 편집자가 깊이 관여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 쿄스케가 ‘아직 중학생인 여동생이 여동생을 공략대상으로 삼는 18금미소녀게임을 선호하는 오타쿠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상코미디로, 편집자가 작가의 장점이라 파악한 ‘등장인물들 사이의 경쾌한 대화’를 살리기 위해 기획된 소설이죠.그 인상적인 설정 탓에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정식발매되기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사실 작중에 ‘여동생이 여동생의 야한 장면이 나오는 게임을 한다’라는 설정에서 기대할 만한 내용은 거의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남들에게 자신의 취미를 숨기고 있던 여동생 키리노가 오타쿠로서 겪게 되는 다양한 트러블에 중점을 두고 있었죠.
일종의 가족코미디로서 경쾌하게 진행되는 작풍 때문에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만,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1권의 후반부에서 키리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취미를 들키게 됩니다. 오타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아버지는 키리노의 그런 취미를 그만두게 만들고 소장품들도 뺏으려 하죠. 이때 오빠인 주인공이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하게 됩니다만, 독자들이 어색함을 느꼈던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오타쿠가 아닌 주인공의 입을 빌려, 오타쿠를 긍정하는 말을 하게 했기 때문이죠.
일본에서의 오타쿠 긍정
사실 일본에서의 오타쿠의 사회적 지위는 한국에서보다 낮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덕후’라는 식으로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리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뿌리가 깊으면서 폭이 넓은 일본에서의 부정적 이미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원래 일본에서 ‘오타쿠’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정착한 건 로리타 취향의 오타쿠가 범인이었던 1988~1989년의 도쿄・사이타마 연속소녀유괴살인사건(이른바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때문입니다. 일본사회에서 오타쿠란 처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알려졌던 개념인 것이죠.
그 시절처럼 변태적 범죄자 취급받는 경우는 줄어들었습니다만,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의 일본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에 등장하는 쿄스케와 키리노의 아버지도 그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오타쿠를 보고 있는 전형적인 일본인 중 한명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차별이 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반발도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신들이 과도하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오타쿠들을 ‘긍정’해주기 위해 활동했던 것이 바로 가이낙스 사장 출신의 오카타 토시오였습니다.
오카타 토시오는 오타쿠에 대한 네거티브한 이미지가 만연하던 90년대 중반에 오타쿠의 대변자, 옹호자로서 등장한 인물입니다. 저서인 『오타쿠학 입문』의 「하지만 나는 사실 오타쿠는 차별받을 인종은커녕 ‘영상의 세기’라 불리는 이 20세기에 태어난 뉴타입 인종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타쿠를 예리한 식견을 지닌 전문가라 규정하고 정보화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라는 주장을 폈었죠.
오타카 토시오는 이전까지 매스컴에 등장하던 오타쿠들과는 달리 말솜씨가 있었는데다가 실제로 오타쿠를 이용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실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주장은 상당히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일본대중문화개방이 시작되던 90년대 말의 한국에서는 이런 오카타 토시오식의 오타쿠 해석이 중점적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한때 오타쿠를 대단한 것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생기기도 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식의 오타쿠 긍정은 사실상 소멸하게 됩니다. 엘리트 의식이 강했던 70~80년대의 오타쿠에서 보다 라이트하고 대중화된 90~2000년대의 오타쿠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오타쿠들 사이에게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 되고 말았죠.
오카타의 『오타쿠학 입문』이 간행된 게 1996년. 이 시기에 『에바』붐에 편승하는 형태로 오카타 등 제1세대가 갑자기 오타쿠 작품이 아니라 오타쿠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 오타쿠라는 말이 포지티브한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간행되는 오타쿠 제1세대에 의한 「오타쿠 계몽서」에, 『에바』의 기원을 찾기 위해 과거의 오타쿠 작품을 뒤지고 있던 당시 중학생이던 필자의 세대는 기쁘게 달려들었다.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라고 하면 멋있겠지만 실제로는 스쿨 카스트 최하층에서 매일 우울하게 지내던 시기에 「오타쿠는 실은 문화 엘리트다! 그러니까, 너를 바보 취급하는 학교애들이야말로 바보인 것이다!」(의역)이라는 오카타의 말이 복음처럼 들렸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게 오카타에게 멋지게 세뇌당한 필자는 『오타쿠학 입문』에서 우리들의 적이라고 배운 서브컬처(라는 것이 뭔지는 전혀 모르겠었지만, 아마 학교에서 여자한테 인기 있는 짜증나는 남자놈들이 듣고 있는 B'z하고 쟈니즈하고 SMAP 같은게 분명하다, 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를 타도하고, 오타쿠 유토피아를 건국하기 위해 훌륭한 오타쿠가 되는 것이다, 라고 결심했고─결국 좌절했다.
-『유리이카(ユリイカ) 2005년 8월 임시증간호 오타쿠VS서브컬!(オタクVSサブカル!)』
前島賢「僕をオタクにしてくれなかった岡田斗司夫へ 断絶と反復と」
그 후로도 다양한 방면에서 오타쿠 긍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은 물론 오타쿠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조차 계속해서 실패해왔습니다. ‘오타쿠도 나쁘지 않다’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논리는, 일반인들은 물론 오타쿠 본인들조차 접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타쿠 긍정’은 결국 개개인의 영역의 문제가 되고, 오타쿠들 자신이 즐기는 픽션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되는 시대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타쿠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기피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오타쿠의 자의식을 최대한으로 자극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상실체험으로 인해 현실세계에서의 존재기반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결락을 지닌 히로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의 존재의의를 회복하는 『ONE ~빛나는 계절로~』등 다양한 ‘긍정’의 이야기가 생산되고 오타쿠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타쿠 자체를 직접적으로 소재로 삼은 작품에서 내놓은 테마는 이런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개개의 드라마를 지지하는 사람은 있어도, 전반적인 공감을 준 경우는 없었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오타쿠 문화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오타쿠의 자의식이나 욕구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걸 생각하면, 정작 오타쿠 자체에 대하여 해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중심에 위치하지 못했다는 건 상당히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오타쿠에 대해서 직접 얘기하지 않고 항상 다른 방향성에서만 접근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오타쿠 자신이 ‘오타쿠 긍정’의 이야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소설가인 이시다 이라의 소설『아키하바라DEEP』은 벤처회사를 만든 오타쿠들이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IT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만, 오타쿠에 해당되는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시다 이라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오타쿠들을 재능 있고 멋진 녀석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정작 진짜 오타쿠들이 그런 묘사를 접하면 낯간지럽기만 한 것이죠.
상당구의 오타쿠는 ‘오타쿠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접할 때 이런 식으로 반응합니다. 『현시연』처럼 오타쿠에 대한 가치판단을 최소화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타입이라면 모를까,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오타쿠를 긍정하는 이야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오타쿠 긍정은 오타쿠 부정에 대한 반발과 보상심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엘리트의식을 지니고 있던 과거 세대의 오타쿠들과는 달리 최근의 오타쿠들은 자화자찬이 어렵습니다. 결국 오타쿠의 비관적인 자의식은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긍정해봤자 결국 오타쿠는 오타쿠’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를 읽는 오타쿠의 자의식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후반부에 대한 반응에는, 이런 오타쿠의 자의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키리노는 아직 중학생으로, 오타쿠 취미는 악영향만 준다고 생각해 금지시키려고 하는 아버지에게 논리적으로 항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인 쿄스케가 키리노를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반론하게 되고, 키리노의 취미는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열중할 수 있는 취미라는 것을 설명하고 악영향만 준다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결국 아버지를 설득하게 되죠.
「물론 나는, 그녀석들의 취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 없지만! 푹 빠진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그런 건 말야, 중요한 거 아니냐고! 이것봐! 그렇게 간단히 버려도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허락해주라는 거냐? 나쁜 영향밖에 주지 않는, 쓸데없는 취미를?」
아버지가 일어나서 나를 봤다. 키리노의 100배는 무서운 눈빛이 심장을 꿰뚫었다.
오줌을 지릴 것 같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고 싶어.
「나쁜 영향밖에 없는, 쓸데없는 취미라고 했지...?」
-후시미 츠카사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이는 오타쿠가 아닌 쿄스케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객관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주장은 오타쿠인 키리노가 해야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오타쿠인 작가의 말이기도 합니다. 오타쿠의 자기변호를, 일반인의 입을 빌리는 것으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죠.
이 부분을 의식하게 되는 독자, 즉 오타쿠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독자는 여기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놓고 자화자찬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인의 입을 빌려 오타쿠를 긍정하려고 했다는 점을 거북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권에서는 오타쿠에 관련된 일종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쿄스케의 입을 빌려 ‘작가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타쿠에 대한 편견 내지는 차별의식을 지닌 상대방에 대한 반론을, 일반인인 쿄스케를 통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견해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는 것이죠.
더군다나 18금 문제나 생리적인 거부감 등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쿄스케가 ‘자폭’해서 얼버무리면서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에,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호의적으로 받아넘기기가 어렵게 됩니다.
반대로 오타쿠로서의 자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독자는 이런 감상을 갖지 않습니다. 조금 작위적이긴 하더라도 작가의 말이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은 소설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그냥 오빠가 여동생을 멋지게 감싼 장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혹은 오타쿠를 대변해주는 쿄스케의 주장에 순수하게 감동하고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죠.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후반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가 있고 제기하지 않는 독자가 있는 건 이런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독자가 갖고 있는 오타쿠로서의 자의식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그런 의견차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설득력이 있는 서술을 보여줬다면 얘기가 달랐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건 오빠가 여동생을 챙겨주는 내용인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가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는 ‘오타쿠 긍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목적성을 지니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닙니다만, 오타쿠인 여동생을 긍정해주려면 ‘오타쿠 긍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물론 키리노가 성장해, 오빠가 아닌 자신의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의미가 변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속의 오타쿠 긍정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덧글
바나나 2009/07/04 00:24 # 삭제 답글
저는 오타쿠로서의 자의식이 매우 강한 모양이군요. 소설 후반부에서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크로이츠 2009/07/07 20:06 #
쑥스러움이랄까 찜찜함이랄까, 그런 걸 느끼기 쉽죠...인간♡실격 2009/07/04 00:31 # 답글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내 오라비가 이렇게 관대할 리 없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타쿠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야!!! 라는 주장의 근거가 [키리노는 자기가 모델로 번 돈으로 오덕 굿즈를 사, 키리노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해]이기 때문에 매우 난감했지요(..). 가혹하다.
크로이츠 2009/07/07 20:09 #
아니 그 부분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가 아니고 "당신 딸은 그만큼 훌륭한 애니까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너그럽게 봐줘"라는 얘기였죠...오빠는 참 착합니다. 저도 저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지는 않군요.
시노 2009/07/04 00:45 # 답글
아직 오레이모 1권을 읽어 보지 못한지라 문제의 대목에 대해서는 코멘트하기 어렵네요. 어쨌든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그나저나 지난 번 현시연도 그렇고, 요즘 쓰시는 글이 어째 '작품 속에서의 오타쿠 긍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군요. (웃음)
크로이츠 2009/07/07 20:10 #
쓰고 싶은 게 여러가지가 있는데, 비슷한 주제를 한꺼번에 모아서 쓰는 중입니다. 아마 다음번에 쓰는 걸로 '긍정 3부작'이 완결될듯(?)Niveus 2009/07/04 00:53 # 답글
기본적으로 이 문제로 홍열을 앓았던적이 있는지라 이제 꽤 관대하게 넘어가주고 있습니다.저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맘 비우고 신경 꺼버린다음에' 보면 된다고 생각중 --;;;
실 생활에서 한번정도 있었을지도 모르는 저런 트러블의 기억과 오버랩되면 아무래도 좋게 볼사람은 적어지죠(...;;;)
크로이츠 2009/07/07 20:11 #
저는 딱히 취미면에 관해서 부모님의 간섭을 받은 적은 없군요(...)셸먼 2009/07/04 00:58 # 답글
설득 장면은 확실히 위화감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저 쿄스케의 자폭이 너무 웃겨서 다른 생각이 전부 날아가버렸었습니다(...). 오히려 논점 이탈로 어려운 이야기를 교묘하게 피해간 것이, '머리 잘 썼네'라는 느낌이었어요.크로이츠 2009/07/07 20:12 #
그냥 동생의 위기를 오빠가 멋지게 해결해준 거라고 생각하면 무척 잘 풀어낸 장면이었죠.흑갈 2009/07/04 01:03 # 삭제 답글
오타쿠 긍정하니 요즘에 본 <동쪽의 에덴>에서 나온 니트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크로이츠 2009/07/07 20:12 #
동쪽의 에덴은 제가 못 봐서(...)젠카 2009/07/04 03:31 # 답글
설득 장면은 읽으면서 후련해 했던 사람입니다. 너무 심하다는 위화감이 있던 건 사실이었지만, 어쩌면 저렇게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변해줄까 싶을 정도였던지라... 설득장면보다는 오히려 주인공이 스스로 오타쿠가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독백하는 부분이 더 낯뜨거웠죠;; 정말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작가가 하고싶은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 노골적이라;;;크로이츠 2009/07/07 20:14 #
사실 오타쿠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면 괜찮았을텐데, 그게 오타쿠다보니...-_-딱히 '오타쿠도 괜찮은 놈들이다'라고 널리 알리기 위한 작품인 건 아닙니다만, 묘하게 낯간지럽죠;
한림별곡 2009/07/04 07:20 # 삭제 답글
계속되는 독백으로 논점이 흐리고 다른것과 비교하고 (카리스마 아이돌 광팬)마크로스 풍으로 말하면
내 오타쿠에 대한 관점을 들어!!! 라고 하는것 같다랄까요
거부감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크로이츠 2009/07/07 20:16 #
사실 프로파간다를 위한 소설은 아니고 얘기 자체는 무난합니다. 다만 독자에게 있어서는 자기 얘기다보니 낯간지러워지는 것이죠;네리아리 2009/07/04 09:47 # 답글
읽다가도 씁쓸해져서 보고 싶지 않은 소설이라고나 할까???크로이츠 2009/07/07 20:17 #
아예 보기 싫어지면 그건 너무 민감한 거겠죠(...)코토네 2009/07/04 10:07 # 답글
키리노 스스로 오타쿠에 대한 편견이라는 장벽을 깨지 못하고, 막판에 마음씨 좋은(?) 오빠의 자폭에 가까운 살신성인 덕분에 위기를 회피하는 것이 옥에 티랄까나요. 키리노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좀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만약에 키리노가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해간다면, 나중에는 오빠가 스스로 희생하지 않고서도 잘 극복해낼 수 있게 되지않을까 싶은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크로이츠 2009/07/07 20:18 #
뭐 아직 중학생이니까요...나중에 가면 오빠가 자기한테 얼마나 큰 도움을 줬는지 깨닫게 되겠죠.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Noname 2009/07/04 14:30 # 답글
우와.... 이거 너무 찔리는 얘기로군요; 트랙백 좀 걸겠습니다.크로이츠 2009/07/07 20:18 #
넵~시대유감 2009/07/04 18:01 # 답글
개인적으로는 오타쿠로서의 자의식 수준도 관계가 있지만 키리노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소설에선 쿄스케가 키리노를 잘 변호해주었고 원만하게 수습됩니다만, 실제로 그런 사건이 터지면 오타쿠는 살아남기가 힘드니까요.크로이츠 2009/07/07 20:20 #
이야기속에서는 쿄스케도 살신성인(...)을 해줬고, 어쩌니저쩌니 해도 아버지도 관대한(...) 분이셨으니까요. 그렇게 잘 풀리기는 어렵죠.쿄스케가 아무리 잘 얘기를 해도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로 끊을 수 있으니;
kurame 2009/07/04 23:09 # 답글
전면적으로 주인공을 오타쿠로 내새워 놓고 그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을 긍정하는 작품은 왠만큼 설득력 있지 않으면... 그런 작품이 있긴 있나요? 최근에 읽은 AURA는 라스트씬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느낌이었고...T_T....하긴 저는 빈말로라도 부모님 앞에서 제 취미가 양호하다고는 도저히... 난 안될거야 아마.
크로이츠 2009/07/07 20:23 #
아마 오타쿠는 "오타쿠는 좋아! 이얏호!"라는 작품은 솔직하게 긍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오타쿠는 오타쿠스러워서 다메다메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자"가 가장 공감을 얻을 수 있는듯....사실 다음에 얘기할 작품이 AURA입니다.
hogh 2009/07/04 23:52 # 답글
낮뜨겁지만 오빠가 동생을 지켜주는 장면 자체가 좋았음.노란개구리 2009/07/05 04:35 #
저도 그쪽에 한표. 우리집에서 들켰다간 마녀사냥이 됬을텐데 하면서 부러워했다지요. 전 자의식 같은건 없나봐요 ㅡㅡ;;크로이츠 2009/07/07 20:24 #
정말이지 오빠는 된사람입니다. 챙겨주고 도와주고 지켜주고 너무 착하죠-_-심장병 2009/07/05 00:28 # 삭제 답글
그렇다면 난 자의식은 별로 강하지 않은편........이미 저 소재보다는 소재가 동반한 화제가 저한테는 더 중요한 요소니까요
크로이츠 2009/07/07 20:25 #
오타쿠에 대한 얘기로서는 최근 나온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퀄리티의 작품이니까요...카이즈나 2009/07/05 02:21 # 삭제 답글
작중 쿄스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치게 되는 오타쿠 긍정론은 뭐 귀를 열어두고 듣자면 맞는 소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인식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어떻게 보자면 그냥 말장난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2권 자폭 직전의 신화 운운은 웃을 수 없는 개그 수준이었고;이런 설득력의 부족을 쿄스케의 장렬한 자폭으로 회피하는 게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는 포인트이긴 합니다만 정작 방금 전까지 쿄스케가 신나게 떠들던 오타쿠 긍정론을 확실하게 상대방의 마음에 때려박을 수단이 없다는 걸 입증하는 꼴이 되기도 하니 오타쿠 긍정이라는 면에서는 대실패라고 봅니다.
오타쿠 긍정론이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고 오레이모 같은 껄쩍지근한 수준에서 그치는 건 역시 오타쿠를 옹호할 계층은 오타쿠 자신밖에 없다는 점이겠죠. 자신을 오타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가 "좋아서 즐기지만 솔직히 까발리기는 그렇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혹시 아닌 사람이 있다고 해도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오타쿠에 의한 비난 때문에 곧 의식을 바꿀 테고요.
그런데... 그럼 오타쿠들은 대체 어느 시점에서부터 스스로 음지에 숨어들고, "우린 안될거야 아마" 같은 자포자기식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걸까요.
크로이츠 2009/07/07 20:32 #
한국의 경우는 자료나 연구가 별로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 힘듭니다만, 일본에서라면 에반게리온 이후인 걸로 보입니다.70~80년대(내지는 90년대 초반까지)의 오타쿠는 대학 동호회나 컨벤션 등에 참가하면서 소속감이나 서열의식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일종의 엘리트의식까지 있었다고 합니다(사회의 평가와는 별개로). 하지만 그들과 단절된 다음 세대의 오타쿠들은 기존의 오타쿠들이 갖고 있던 프라이드는 잃어버린 모양이더군요.
나루 2009/07/05 14:17 # 답글
전 자의식이 약한 편인가보네요. 아님 그냥 생각이 없는건가?크로이츠 2009/07/07 20:32 #
뭐 사람마다 다른 거겠죠;나랏미르 2009/07/05 17:43 # 답글
이건 본문의 주제와는 큰 관계 없는 좀 뻘글입니다만,ONE은 저런 내용이 아니에요...ㅠㅠ
(생체실험이라니...ㅠㅠ게다가 오타쿠의 긍정과는 그다지 관계가...--;)
나랏미르 2009/07/07 01:48 #
음...잘못봤군요...생체실험이 아니라 상실체험이었군...--;(쥐구멍이 어디있더라..ㅠㅠ)
그래도 ONE이 오타쿠의 긍정과 관련있는 스토리라는 데는
이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Key의 스텝이 될 당시 택틱스의 개발팀 멤버들이
그런걸 염두해두고 만들었을 리도 없고...
ONE의 영원의 세계를 오타쿠의 정신세계와 연결짓는다면
클라나드의 환상세계도 오타쿠와 연관지을 수 있다는 말도안되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는 결론이 나오는지라...--;
크로이츠 2009/07/07 20:36 #
네, 상실체험이었습... MOON도 아니고 생체실험은 아니죠(...)ONE의 테마가 '오타쿠의 긍정'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긍정(뭐 치유도 되고 재생도 되고 성장도 됩니다만)의 이야기였다는 것이고, 그게 오타쿠들이 원하던 것과 맞아떨어졌다는 것이죠.
명확히 오타쿠의 심리를 갖고 이야기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즈 2009/07/06 08:29 # 답글
이걸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네요;;;역시 의식의 전환이라는 것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네요.
1권만 봐서 이 작품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개입하기에는 좀 모자라지만, 최소한 1권 감상하면서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봤었거든요.
세삼 다시보게 됩니다 (..)
크로이츠 2009/07/07 20:37 #
아니 그냥 아무 위화감 없이 재미있게 보셨다면 그게 더 좋은 겁니다. 책이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독자가 너무 민감한 것 뿐이니까요-_-M.Miru 2009/07/06 09:53 # 삭제 답글
음.. 오타쿠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이라는 부분은 자주 다뤄졌던 것이기때문에 변론의 근거가 그 모양이라고 해도 머리로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만, 중학생 여자아이가 "18금게임"을 소비한다는 그 자체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고.
차라리 18금이 아닌 다른 쪽 소재의 오타쿠로 설정했어도
되지 않았었나 합니다. 그렇게 했으면 임팩트는 좀 떨어졌겠지만
자극을 주기 위해 설정상 조금 도를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군요.
자금출처가 어떻든지간에, "중학생이 18금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긍정을 얻긴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을 작중에서 어물쩍 넘겨버리는 편의주의적 진행이 불편하게 느껴지더군요.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보던지, 아니면 소재를 살짝 바꾸던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게 이 작품의 원죄(?)가 아닐까요.
크로이츠 2009/07/07 20:42 #
18금 게임이라는 소재는 결국 이야기를 흥미있고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상업적인 소재죠. 덕분에 화제가 되었고 책도 많이 팔렸으니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다만 그걸 이야기속에서 풀어나가야하는데 어떻게 정당화시킬 방법이 없다보니, 결국 얼버무리면서 끝낼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울베어 2009/07/06 15:08 # 답글
개개인의 경험에는 크고 작은 기온차가 있을 수 밖에 없는지라 쿄스케와 키리노의 좌충우돌을 웃어넘길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는 책의 소재 선택과 플롯의 문제일 것이고…전체적으로 봤을 때 오타쿠는 스스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만 세상 천지가 개벽하여 개선할 필요성도 그다지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려서… 너 오덕이지! 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필사적으로 부정하거나 그래 오타쿠인게 어때서, 우리는 이래도 괜찮아! 오히려 대단하지!(=그러니까 제발 그만 내버려두고 관심 꺼!) 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던 시기를 지나. 응, 그래. 그런데? 하고 흘려넘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셈입니다만.
긍정적인 무관심은 어찌저찌 손에 넣은 셈입니다만 사람이라는게 욕심많은 동물이라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겠지요. 오덕할 자유(웃음)를 손에 넣은 후에는 좀 더 나아가 "우리는 실은 이러이러해. 재미있지, 재미있지 않니…?"하고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니까요. 마치 제가 여기 댓글에 혼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웃음).
어쨌든 거부감이 생긴다고 한다면 바로 그 부분. 실패했을지언정 여전히 남아있고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주류에 대한 구애를… 대놓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니 낯뜨거워지는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겠죠. 우리는 우리대로 쿨하게 살거야! 그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자의식 강한 사람이란 열 명 중 한 명 정도일 것이고. 그 외 아홉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근질근질해지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오오 신이시여 이 타락한 양을 돌보소서.
크로이츠 2009/07/07 20:49 #
저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는데 별로 그것때문에 마음에 부담갖는 건 아니지만 굳이 관심갖지는 않았으면 좋겠음'파군요(...)예전에 있었던 '오타쿠는 엘리트' 논리가 묻혀버린 이후, 사회적 인식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타쿠 개개인에게도 그런 욕구는 많이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좀더 좋은 눈으로 봐주면 좋겠다는 잠재적인 희망은 남아있는 것 같더군요. 근데 그걸 드러내는 것은 '오타쿠인 나'를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부끄러워지는 일인지라...
낯간지러운 건 피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2009/07/10 04:5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하루카 2009/07/16 15:21 # 답글
저는 이 책과 정말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황을 겪어왔는지라... 오히려 맨마지막 쿄스케의 변론은 피눈물 나게 공감가더군요...(먼산) 참고로 제가 오라빕니다(한숨)다만 1권을 다읽고 느낀점은 그저...
'현실은 이렇지 않아!' 죠 뭐(...)
오타쿠자의식에 관한건... 저에겐 미묘하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