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연』과 ‘탈오타쿠’, 그 사이에 있는 것 by 크로이츠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탈오타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탈오타쿠’라는 건 말 그대로 오타쿠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오타쿠적인 취미를 그만둔다는 것이고, 둘째는 오타쿠적인 외견, 성격, 행동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죠.
양쪽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만, 일본의 ‘탈오타쿠’ 열풍에서는 후자가 더 중요시되었습니다. 오타쿠 특유의 모습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평균에 가까운 모습이 되려고 하는 것이었죠.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오타쿠 패션’에서의 탈피였습니다. 흔히 오타쿠들은 본인이 패션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다가 세대적, 사회적 원인으로 인해 특정한 계열의 옷차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그런 복장에서 벗어나 깔끔하고 무난한 옷차림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거죠. 그 결과 웹사이트『탈오타쿠 패션 가이드』가 서적으로 출판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고, 시대의 변천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아키하바라 등지에서 기존의 전형적인 오타쿠 패션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이번에는 깔끔하고 무난한 ‘탈오타쿠 패션’이 새로운 오타쿠 패션의 전형으로 정착하려는 듯한 경향도 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탈오타쿠 열풍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작되어 영화화, 드라마화되어 사회현상까지 일으킨 『전차남』이었습니다. 연애경험이 없는 전형적인 오타쿠였던 전차남이 에르메스와의 연애를 위해 패션에서부터 데이트기술까지 ‘배워서’ 자기 자신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담은 『전차남』은, 그야말로 탈오타쿠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탈오타쿠의 본질

그런데 이런 『전차남』으로 대표되는 탈오타쿠 열풍은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오타쿠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이라는 인식입니다.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자기 자신을 개조하지 않으면 연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이건 사회적인 편견이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오타쿠들 자신의 자기혐오이기도 합니다. 오타쿠는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차별 내지는 편견이 섞인 시선을 경험할 수밖에 없고, 인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들을 ‘안 좋게’ 평가하는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고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에 휩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오타쿠는 ‘오타쿠인 자기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콤플렉스가 표면화되어서, ‘오타쿠’인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회적인 지위 향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탈오타쿠’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문제, 특히 연애 문제에 있어서 그 해결책으로 ‘탈오타쿠’를 생각하는 것이 오타쿠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되어갔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오타쿠 사이에서도 연애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고 ‘탈오타쿠’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연애관계는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만,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오타쿠인 것’에서 찾는 사고방식은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오타쿠’라는 이름으로 표면화되면서 화두가 된 것이죠.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매너를 갖추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만, 오타쿠라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사회적인 성장이라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은 정말로 바람직한 것일까요.
얼핏 보기에는 훈훈해 보이는 『전차남』은 일면에서는 상당히 차별적인 구조를 지닌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차남』은 사회적, 연애적으로 하류층인 전차남이 네티즌들에 의한 ‘가르침’을 받아 ‘훌륭한 인간’이 되어서 상류층인 엘메스와의 연애에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여기에는 오타쿠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차남은 순정파이면서 노력파입니다만 연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약자이면서 하류층인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죠(에르메스는 이런 전차남의 신분상승을 친절하게 리드해줌으로써 강자이자 상류층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멋있어지겠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되겠다 정도면 괜찮겠습니다만, 오타쿠인 자기 자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해 바꾸려고 하는 건 지극히 자학적인, 차별적인 사고방식인 셈입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연애자본주의의 룰과 모에 오타쿠의 룰이 충돌하는 일은 없다. 시종일관 「연애자본주의의 룰이 보다 고차원적인 룰이며, 모에 오타쿠는 한 단계 낮은 존재이다」라는 불문율이 유지되고 있다. 아무 스킬도 없는 주인공이 주위에게 응원 받으면서 서서히 연애의 스킬을 마스터해, 마지막에는 연애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르메스에게 「수고 했어」라고 축복받으며 눈물과 함께 연애자본주의 세계로의 참가를 기뻐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전차남』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말하자면 일종의 자기계발 세미나와 비슷하다. 모에 오타쿠라는 잘못된 사상을 부정하고, 연애자본주의라는 멋진 사상을 전차남에게 심어준다는 이야기 구조인 것이다.

-혼다 토오루『모에하는 남자(萌える男)』

또한 ‘탈오타쿠’는 자기 자신의 오타쿠적인 단점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보다 상급의 인간이 되어 연애 등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상당히 안이한 사고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오타쿠의 자의식을 계속해서 그려온 키즈키 아키라의 만화 『메이드 제군!』에서 톳토리 다이스케는 연애에 대한 오타쿠적인 결벽성 때문에 히로인과 결별하게 됩니다만, 관계의 회복을 원하게 된 그는 소장하던 피규어 등을 전부 버리고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세련되게 한 뒤 히로인을 다시 만나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연애의 성취를 위해 ‘탈오타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태어난’ 자신으로 히로인과 새롭게 마주보려 한 것이죠.
하지만 파국의 근본적인 원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방어적인 선택을 해버리는 그의 본질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탈오타쿠’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을 바꾸고 ‘앞으로는 잘 하겠다’라고 외쳐도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와 같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오타쿠’는 오타쿠가 연애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처럼 인터넷과 매스컴, 그리고 픽션 작품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부정이면서 안이한 사고방식인 ‘탈오타쿠’가 오타쿠의 연애라는 테마에 있어서 필수요소처럼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탈오타쿠’가 화제가 되고 있었을 때, ‘탈오타쿠’의 주박을 무시하고 오타쿠의 연애를 설득력 있게 그린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시연』의 키오 시모쿠입니다.


탈오타쿠라는 성장을 하지 않는 오타쿠의 『현시연』

키오 시모쿠의 만화 『현시연』은 주로 초보 오타쿠인 사사하라, 오타쿠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일반인인 사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통해 오타쿠 서클의 일상생활을 그렸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신입생인 오기우에의 비중이 커지고, 이윽고 사사하라와 오기우에의 연애스토리가 메인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오기우에는 오타쿠을 싫어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캐릭터입니다만, 그런 혐오감은 그녀 자신이 오타쿠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동시에 그녀의 ‘오타쿠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머리스타일이나 복장에도 오타쿠 특유의 어긋난 센스가 반영되어 있긴 합니다만,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오타쿠스러운 부분은 역시 오타쿠에 대한 복잡한 심리와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이겠죠.
그런 오기우에는 현시연에 들어와서 회장인 사사하라에게 끌리게 됩니다. 사사라하는 딱히 용모나 성격이 특이한 편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오기우에가 싫어하는 ‘오타쿠’였습니다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사사하라를 의식하게 되었고 사사하라 또한 오기우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기우에는 그런 관계를 피하려 하고, 결국 사사하라가 직접 고백해도 거부해버립니다. 오기우에에게는 자신의 오타쿠 혐오의 기원이 되는, 중학교 시절 남자친구를 소재로 호모일러스트를 그렸다가 그 남자친구를 상처 입혀 전학가게 만든 과거가 있기 때문이었죠.
오기우에는 오타쿠를 혐오하고 오타쿠인 자기 자신에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공격적이며 감정조절을 못해 인간관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고치고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 오타쿠를 그만둬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직접적인 체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오기우에의 이런 콤플렉스는 ‘탈오타쿠’의 근간이 되는 그것과 흡사합니다. 오타쿠인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바꿀 수 있기를 열망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시연』에서 키오 시모쿠가 제시하는 해법은 ‘탈오타쿠’와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물론 오타쿠 만화에서 오타쿠를 그만두는 것이 해법이 될 리야 없겠습니다만,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없애고 고쳐서 커다란 변화 내지는 성장을 이룬다는 식의 ‘탈오타쿠’적인 전개는 『현시연』작중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기우에는 결국 사사하라를 받아들이게 됩니다만, 이건 오기우에에게 큰 변화나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사하라가 오기우에의 고백을 듣고 오기우에의 야오이 일러스트를 본 다음에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긍정해줬기 때문이죠.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도 오기우에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격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만 오타쿠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게 되고, 예전에 소속되어 있던 서클에서 크게 다퉜던 여성에게서도 ‘너는 평생 그대로일 것이다’라는 소리만 듣게 됩니다.
결국, 오기우에는 자신의 본질적인 성격적 문제를 극복하는 ‘탈오타쿠’는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닫게 되어
감정의 변동이 너무 심하다.
사사하라 상의 호의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
이런 나와 사귀는 사사하라 상이 불쌍하다.
어떻게 하면 더 제대로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오타쿠를 그만두면 되나?
무리.

-키오 시모쿠『현시연 8』

명확한 변화가 있는 ‘탈오타쿠’를 하지 못한 오기우에는 좀 더 고되면서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는 길을 걷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긍정해주는 주위사람들의 호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있는 오타쿠인 자기 자신을 부여잡고 계속해서 버티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그걸 감수하면서 계속 열심히 ‘오타쿠로서’ 사는 것, 즉 오타쿠인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택한 것이죠.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이 긍정은 결코 안이하고 낙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90년대 중후반 오카타 토시오 등으로 인해 유행했던 ‘오타쿠는 능력 있는 전문가’ 마인드도 아니고, 요즘도 계속해서 나오는 ‘오타쿠도 실은 괜찮은 녀석들이야’ 계열도 아닙니다. 오기우에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격의 오타쿠인 자기 자신을 짊어지면서, 고통스러워도 도피하지 않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죠.
오기우에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완전히 극복하고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로 성장해 ‘탈오타쿠’에 성공했다면(오타쿠 취미를 그만두지는 않더라도) 『현시연』은 상당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시연』에서는 오기우에라는 캐릭터를 그린 방식은 그와 같은 ‘탈오타쿠’적인 자기부정이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긍정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린 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 책임은 무겁고
무겁고
무겁다.
그러니...
평생을 걸쳐서 짊어져야 한다.

-키오 시모쿠『현시연 8』

일본판 『현시연』8권의 띠지에는 “오타쿠니까, 사랑을 했다.”라는 문장이 크게 적혀있었습니다. 『전차남』등 동시대의 ‘탈오타쿠’적인 대중 드라마는 특이한 별종들이 연애를 성취하는 이야기를 그린 “오타쿠도 사랑을 한다.”에 가까웠습니다만, 『현시연』의 이것은 “인간이니까, 사랑을 했다.”라고도 읽을 수 있는 자기 긍정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관점입니다.
오타쿠라는 정체성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타인을 좋아할 수는 있으며 그 사실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 『현시연』에서 내세운 “오타쿠니까, 사랑을 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지금까지의 오타쿠 문화사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이면서 설득력이 있는, 오타쿠에 대한 긍정의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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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G-- 2009/07/01 09:31 # 답글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응? 한 부분도 있었지만 (오타쿠의 비사회성은 넓은 분포로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 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뒤로 갈수록 점점 크게 공감하고 갑니다. 탈 오덕=어른, 오덕=어린애같은 유치한 것 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탈덕을 하던 오덕을 알고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덕이냐 오덕이 아니냐가 아니고 인격이었던 탓에 멋을 부리고 여자를 사귀는 뭐 지금도.......
    가끔 강박처럼 오덕인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들(특히 여성들)을 많이 보았는데 적당하면 좋지만 과하면 결국 자기 혐오나 동족 혐오로 이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웠습니다.
  • 크로이츠 2009/07/01 23:56 #

    사실 저는 오타쿠라는 존재 자체에 어떤 경향성이 있다기보다는, 어떤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오타쿠가 되기 쉬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비사회적인 부분도 그렇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자의식도 그런 거겠죠.
    사실 오타쿠니 오덕이니 하는 개념이 다른 취미인(?)에 비해서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고 의식되다보니, 그 이미지에 스스로 붙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 Noche 2009/07/01 10:5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현시연>을 보고 난 느낌은 "오타쿠가 이렇게 건강한 청춘을?!" 이라는 신선함이었죠. 작가 특유의 담담한 시선과 연출력도 좋았구요. 막연한 판타지도 아니고 자위용 미화도 아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느껴지는 리얼한 이야기일 뿐인데 그 안에서 긍정의 힘이 느껴지는 게 매우 좋았습니다. 결국 모든 성장은 냉철한 자기 긍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초반부에 묘사된, 사키의 컬쳐쇼크와 마다라메의 미묘한 연정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 크로이츠 2009/07/01 23:57 #

    키오 시모쿠씨 특유의 리얼리즘이겠죠. 뭐 현시연 자체는 커플비율도 높고 내부트러블도 별로 없어서 조금 비현실적이기도 한데(...)
    작가가 안 좋은 방향성으로 리얼하게 그리려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요.
  • 시노 2009/07/01 11:25 # 답글

    '오타쿠인 나'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거부감이 비교적 없는 저에게는 굉장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 크로이츠 2009/07/01 23:59 #

    공감도가 꽤 높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좀 평균보다 해피한 감은 있어도(...)
  • 이네스 2009/07/01 12:04 # 답글

    현시연이 그래서 그렇게 화재가 되었군요.

    다만 물건너든 우리나라든 아직까지 사람들의 생각은 전차남에 머물러 있다고생각됩니다...
  • 크로이츠 2009/07/01 23:59 #

    아니 딱히 현시연이 그것 때문에 인기를 끈 건 아닙니다. 그냥 제 해석이 그렇다는 거죠...
  • 아레스실버 2009/07/01 12:55 # 답글

    스킨이 바뀌었군요.
  • 크로이츠 2009/07/02 00:00 #

    스킨 2.0 교체를 위한 과도기로서 며칠 전에 바꿨습니다.
  • 폴리시애플 2009/07/01 13:19 # 답글

    현시연도 결국에는 자기변호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변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역시 뭔가 죄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죠. 게다가 아이러니하게 현시연 때문에 오타쿠가 공격을 받게 되는 현상도 있었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 크로이츠 2009/07/02 00:01 #

    아무 문제도 없는 거라면 아예 다루지도 않았을테니까요-_-
    딜레마죠.
  • incognito 2009/07/01 14:10 # 답글

    전 그래서 오기우에가 미웠어요. 너만 그렇게 산뜻하게 자기긍정하고 나가면 다냐.
    라는 기분. 8권을 읽다가 배신당했다는 기분마져 느꼈습니다.
    하찮은 질투라는건 아는데, 알지만 나의 이 치졸한 감정을 숨길수 없더군요.
    그 작은 자기긍정조차 할수 없는 나는 오기우에가 얄밉습니다.
  • 크로이츠 2009/07/02 00:04 #

    결국 오기우에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주위에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렇게 계기가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은 어렵죠.
    카나코도 오기우에도 남자 생긴 다음 여유만만해졌다는 평이 있는 걸 보면 역시 '애인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 케다 2009/07/01 15:1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만약 오타쿠가 연애를 힘들어한다면, 취미적 특질보다는 그 자기부정, 열등감, 혹은 열등감에서 기원한 우월감-_-때문이 더 맞겠죠. 그런 점에서 현시연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식 중 하나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시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키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어요. 입장상 악역이 되기 쉬운, 외부인에 가까웠던 사키를 평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대단하다 생각했죠.
  • 크로이츠 2009/07/02 00:07 #

    사실 성격이 좋으면 취미야 문제가 안 되니까요(...)
    사키는 등장인물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였죠. 사키가 없었다면 초반부의 재미는 반도 못 됐을듯(...)
  • 셸먼 2009/07/01 20:30 # 답글

    반면, 채념에 절정에 달해 끝까지 오타쿠의 전형을 보여준 마다라메를 위해 눈물 한방울(..)
  • 크로이츠 2009/07/02 00:07 #

    마다라메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 白月淚那 2009/07/01 21:13 # 답글

    전차남에 저런 숨은 의도(?)가 있었다니...
  • 크로이츠 2009/07/02 00:08 #

    분석을 하자면 그런 시선이 은연중에 담겨 있다는 것이죠.
  • JINN 2009/07/01 22:42 # 답글

    몇 번을 봐도 참 좋은 만화예요. 오타쿠 세계 밖에 있던 사키가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외부인' 신분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현시연에 받아 들여지고, 자기혐오에 쩔어 있던 오기우에 역시 오타쿠인 자신을 부정하지 않은 채 좋은 결말을 맺지요.

    그런데 오기우에의 중학 시절의 과오-_-는 참......이지메에 걸려든 결과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연예인이라면 몰라도 맘 있는 남자아이를 소재로 야오이 출판을 감행하다니...대성할 아이.....(작품에서도 상당한 인재-_-;;;로 나오지만요)
  • 크로이츠 2009/07/02 00:10 #

    현실에서도 그렇게 동인지까지 만드는 건 드물텐데 걔네들은 어쩜 그렇게 대단했는지... 시골이어서 그런걸까요;
    사키도 오기우에도 변화가 재미있던 캐릭터였습니다.
  • PHugsy 2009/07/02 00:05 # 답글

    현시연은 몇 권보다 말았는데 다음 달에 한꺼번에 질러봐야겠군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오타쿠의 마이너스 오라는 한 인간을 나락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과거엔 그 오라에 부딪치는 자신을 발견하면, 살짝 움츠리고 풍파가 지나가길 기다렸죠. 하지만 현재는 그저 그러려니하고 일본문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냐 아니냐의 문제고, 무엇보다, 즐거우니까요.
  • 크로이츠 2009/07/02 00:12 #

    저 같은 경우는 오타쿠라는 자학은 없습니다만(그것 말고도 자학할 게 많기 때문에;) 별로 그런 걸로 관심받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에 굳이 드러내지는 않는 편입니다. 전 그냥 혼자서 즐기면서 만족하고 있는 것 같네요.
  • 히마와리 2009/07/02 01:24 #

    사실 현시연의 또하나의 묘미는 한정판 부록으로 딸려있는 '현시연을 소재로한 메이저들의 동인지'인데..
  • Resi 2009/07/02 05:25 # 삭제

    히마와리// 그 점이 좀 슬픈 게 지금도 만화 전문 서점 같은 곳 가면 아직도 한정판이 남아있고 그런 경우가 있더군요.. ㅡㅜ
  • 히마와리 2009/07/02 23:57 #

    Resi//으허허헣응허흥ㅎ허어읗.... 제가 가는 서점에도 남아있다는...
  • 히마와리 2009/07/02 01:22 # 답글

    개인적으로 오타쿠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 현시연만큼 산뜻하게 읽었던 작품도 없었습니다.
  • 크로이츠 2009/07/02 23:56 #

    지나친 미화도 희화화도 없었으니까요.
  • Resi 2009/07/02 05:24 # 삭제 답글

    마, 마다라메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필요는 없을 거예요.
    분명 마다라메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오타쿠웨이(...)를 가게 된 걸 테니까요!

    ..그래도 눈물 좀..ㅠㅠ
  • 크로이츠 2009/07/02 23:56 #

    하지만 분명 가끔씩 베게를 눈물로 적시고 있을 마다라메를 생각하면...ㅠ_ㅠ
  • bullgorm 2009/07/14 11:05 # 삭제 답글

    사실 현시연에서 오기우에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오타쿠임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주연급 오타쿠들 각각의 각오는, 오히려 오타쿠를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현상'이 아닌 '사람'으로 받아들여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참견쟁이 무좀녀 동아리 회장이라든지, (물론 외모를 따지기는 하지만) 사사하라의 동생이라든지, 무엇보다도 사키의 존재는 현시연의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었죠..

    스스로 오타쿠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들과 많은 것들을 함께 하면서 결국에는 "짧은 듯 하면서도 긴 시간"이었다며 그녀는 오타쿠들과의 4년간의 대학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줍니다..

    사실 오타쿠가 아니래도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싫어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짜증난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거나.. 뭐 개인마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거야 다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중요한 건 오타쿠들이란 '현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거죠..

    * 어쨌거나 마다라메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짠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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