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 시모쿠의 육아만화 『지옥프리』 by 크로이츠



『지옥프리(ぢごぷり)』는 『현시연』의 키오 시모쿠의 신작으로, 작년부터 「애프터눈」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입니다. 딸 유메코를 출산한 아유미가 쌍둥이여동생인 카나메와 함께 아이를 기른다는, 일종의 ‘육아만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보통 육아만화라고 하면 뭔가 트러블이 이어지면서도 분위기는 훈훈한 작품을 연상하게 됩니다만...


이 만화는 이렇습니다(...).
육아스트레스로 정신붕괴 직전까지 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죠. 괜히 제목이 ‘지옥의 프린세스’의 약자인 게 아닙니다.

모친인 아유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나이인 18세에 아이를 낳았습니다(출산이 3월인 걸 보면 임신 때문에 졸업은 못했을지도). 애아빠는 곁에 없고,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뭐 짐작은 갑니다만) 곁에서 육아를 도와줘야할 어른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여동생인 카나메(그것도 항상 위태위태한 고스로리 소녀)만 같이 있으면서 도와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유미는 하루하루 힘들어지는 육아에 고통 받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는 아기에 대한 원망,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생활이 계속된다는 절망,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에 짓눌려 점점 피폐해지게 됩니다.

「나, 엄마 실격이지」
「그렇지 않아. 유메짱 잘 자라고 있잖아.
젖만 먹어도 살아있으니까 대단해...」

「모유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과 옥시토신은
먹이면 먹일수록 자꾸자꾸 나오잖아」
「뭐?」

각각 ‘애정 호르몬’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면서
수유중에 느끼는 아기에 대한 애정과 행복감의 원천으로서 뇌를 자극해
모성애의 정체라고도 불리고 있는 호르몬...

「나, 이렇게 먹이면서 그게 잔뜩 나오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저는 애를 낳아본 적이 없고(당연하지만;) 애를 키우는 사람과 가까이 지낸 적도 없습니다만(부인과에서 산후 우울증 정도는 배웠습니다만, 실제로 어떤 심리에 놓이는지는 알 수가 없죠), 일본쪽 반응을 살펴보니 실제 육아 경험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다는 감상도 있긴 하더군요. 작가 본인이 『현시연』연재종료 후 애를 키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없는 얘기를 지어서 그린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읽으면서 상당히 찜찜했습니다.
이 작품은 확실히 좀 특이합니다. 흔히 만화나 드라마 등 픽션에서 육아를 다룰 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훈훈한 느낌, 그러니까 모성애라든가 행복이라든가 아이의 귀여움이라든가, 그런 요소를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거든요(처음 부분을 제외하면). 아기 엄마는 당장이라도 학대를 시작할 것처럼 정서불안정이고(책임감은 있는 것 같지만 모성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기 얼굴조차 ‘지옥의 프린세스’답게 전혀 예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었다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 모친과 아기, 그리고 육아에 대한 지나친 악의로 가득 찬 만화라고 위화감 내지는 불쾌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많더군요. 작가의 기존팬들 중에서도 대체 왜 이런 내용이냐고 의문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 자신도 그 중 한 명이고.

작가인 키오 시모쿠는 『현시연』이전에는 상당히 암울한 작풍의 만화를 내놓고 있었고, 작가 자신의 육아경험을 살려서 기존의 육아물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이 만화를 그린 건가...하고 생각도 했습니다만,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죠. 후기에서는 ‘육아 에세이에서는 잘 묘사하지 않는 것도 픽션이라면 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만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악취미적인 작풍을 유지하는 동기로서는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곰씹어보다가, 1권에 수록되어 있는 분량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시 읽어보고 대충 감이 왔습니다.


이 만화, 실은 순애물 미소녀게임에 대한 안티테제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약간 스포일러성이 있기 때문에 민감하신 분은 넘어가주시길)


1권에 실려 있는 에피소드 중 마지막 에피소드는 주인공 자매의 고등학생 시절을 그린 과거편입니다. 시골 고등학교의 미술부가 무대고, 애아빠로 추정되는 인물도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 미술부는 잘 보면 전형적인 미소녀게임의 세계입니다. 남자주인공(애아빠)을 중심으로 한 하렘 구도거든요. ですわ 말투의 아가씨 캐릭터라든가, 고양이귀(?)가 달린 미스테리어스한 선배라든가, 비현실적인(작가의 평소 작풍과는 다른) 미소녀캐릭터도 등장합니다.
이런 히로인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애아빠는 이 만화의 주인공인 아유미를 선택해 맺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애아빠는 죽고(불치병?), 아유미는 홀로 남겨졌지만 애아빠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서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던 거죠.
네, 전형적인 애절한 순애물 미소녀게임의 스토리입니다. 이 만화는 그런 미소녀게임의 슬프고 감동적인 엔딩 이후에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사실 이 만화는 기존의 키오 시모쿠 작품과는 달리 지극히 ‘미소녀물’스러운 그림체입니다. 『제비뽑기 언밸런스』라든가 『현시연』작중에 등장하는 미소녀물의 그림보다 더 모에계열의 그림체죠(고스로리 여동생 등 캐릭터 조형도 그쪽 계열).
이런 갑작스러운 그림체 변화도 미소녀게임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쌍둥이미소녀의 육아만화를 그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런 순애물 미소녀게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세계관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이런 그림체를 택한 것이죠.
속표지를 보면 『현시연』의 마다라메가 「...왜 이런 그림체야?」라고 의아해하는 컷이 있습니다만, 그게 ‘왜 이런 그림체인지’ 생각해보라는 작가의 메시지라면 아마 이것밖에는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육아물로서는 꽤 기분 나쁜 만화입니다. 육아경험이 있는 사람도 여기서 좋은 의미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겠죠. 망가지는 애엄마와 그런 언니를 케어해주려는 여동생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재미 말고는 얻을 게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미소녀게임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생각하면... 『현시연』다음에 연재하는 작품이라는 측면도 있으니, 깊게 생각하면서 읽을 만한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1권 시점에서는 생후 22일까지 소화), 납득할 수 있는 결말까지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군요.

핑백

  • 벨제뷔트의 블로그 : 애프터눈 7월호 블라블라 2009-06-13 23:28:37 #

    ... 님도 결국 성별역전이라는 대세(?)를 피해갈 수는 없었나... 보실 분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심장이 멎을지도. 9. 이건 7월호랑은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글을 보니 최근 키오 시모쿠의 지고푸리를 볼 때다 들끓던 고민 '이 양반이 대체 뭔 의도로 이런 만화를 그리고 있는 걸까'에 대한 해답 비스무리한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관 ... more

덧글

  • 벨제뷔트 2009/06/01 01:16 # 답글

    ...그 각도에서 보니 비로소 이해가 되는군요, 약간은 시원해졌습니다... 약간일 뿐이지만;;;
  • 크로이츠 2009/06/01 01:34 #

    이 만화를 뭔가 명쾌한 기분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 코코볼 2009/06/01 01:20 # 답글

    한번 구입해서 읽어봐야겠군요.
  • 크로이츠 2009/06/01 01:34 #

    어쨌든 재미는 있습니다. 재미는...
  • Niveus 2009/06/01 01:56 # 답글

    ...애 키우는게 힘든건 주변 친척형네 보면 알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 싶긴 했는데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군요 -_-a
  • 크로이츠 2009/06/01 21:00 #

    주인공한테 일부러 힘든 방식을 선택시키는 게 참 지독한 것 같다고 할까요...-_-
  • 수염 2009/06/01 02:58 # 답글

    애 돌보는게 실제로 꽤 스트레스 받는 일이이란건 경험을 통해서 알고있지만서도(...)
    이만화에서 어느 정도로 묘사 되있는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한번 구입해볼까나..
  • 크로이츠 2009/06/01 21:01 #

    안 좋은 부분들만 골라서, 강조해서 묘사해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리묘사도 강하고.
  • 정상화 2009/06/01 03:04 # 답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군요. 저도 좀 시원해졌습니다.
  • 크로이츠 2009/06/01 21:24 #

    뭐 어디까지나 제 해석입니다만(...)
    최근 연재분에서는 '그거 무슨 에로게?'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장면도 있다더군요.
  • 흑갈 2009/06/01 09:42 # 삭제 답글

    무조건적인 밝은 세계가 아니라 감추어진 어두운 세계를 비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군요. 정발되면 말씀하신 뜻에 따라서 해석해보면서 읽어야 겠습니다.
  • 크로이츠 2009/06/01 21:02 #

    작가가 원래 이런 방면에서도 재능이 있었고 현시연에서도 오기우에 관련으로 조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좀 작정을 하고 강하게 나오는 것 같더군요.
  • --G-- 2009/06/01 10:10 # 답글

    역시 짐작했던 각도군요. 전형적인 미소녀풍의 캐릭터가 바로 "엄마" 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육아라는, 보통은 대부분의 독자가 생각하지도 못했을 끔찍한 지옥을 그린다는 점(근친 상간적인 느낌도 들고요)에서 아마도 작품의 주 독자층일 오타쿠 남성을 불편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느껴졌는데... 역시나 주저없이 쏴버리는 키오 시모쿠 선생이군요-ㅂ-;
  • 크로이츠 2009/06/01 21:08 #

    연재시작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상당히 의외였었습니다. 그 키오 시모쿠씨가 눈 큰 미소녀 그림체로 육아물이라니... 미성년자가 애를 키우는 스토리 자체는 예전부터 꽤 있었습니다만, 이건 주인공이 직접 출산을 한 거니까요.
    실제로 단행본을 읽어보니 어프로치가 상당히 극단적이라서 놀랐습니다. 짖궃다고 할까...-_-;
  • 2009/06/01 10:1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크로이츠 2009/06/01 21:09 #

    넷, 감사합니다. 저도 링크하겠습니다.
    (..사실 블로그는 예전부터 가끔 방문하고 있었습니다만;)
  • 송경환 2009/06/01 10:30 # 삭제 답글

    기승전결 '암'이 생각나게 하는군요;;;
  • 크로이츠 2009/06/01 21:10 #

    참 심란한 작품입니다-_-
  • 아사 2009/06/01 10:31 # 답글

    애프터눈을 구독하는 김에 겸사 겸사 보고 있습니다만...1년동안 애를 키워본 입장에서 매우 납득이 가는 부분이 많았네요. 육아 우울증...저는 겪어보진 않았지만 나름 완벽주의에 모범생이었던 주인공이 18세에 아빠 없이, 어른 손 없이 갓난아이를 키우는데 우울증이 오지 않는게 더 신기할 것 같긴 합니다;; 여동생한테 맡기고 외출이라도 좀 하면 좋을텐데...생후 1개월부터는 예방주사도 있으니 외출 에피소드도 나오겠죠?^^;
    미소녀게임의 안티테제쪽으로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애아빠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한것도 애를 가져서 낳은것도 주인공의 선택이었으니까...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 선택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교훈? 을 주는 것 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우울한 내용이 부각되는 걸까 했는데 이 포스팅을 보고 좀 이해가 갔습니다...
    옆에 있으면 여러 조언을 주고 싶은 만화라서 답답함이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밤중 수유를 당장 누워서 하라든가....;
  • 크로이츠 2009/06/01 21:19 #

    아아, 역시 그렇군요.
    사실 미성년자 둘이서 다른 보호자도 없이 애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부모하고는 임신 때문에 절연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중입니다만, 국가에서 뭔가 보조해주는 정책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보이지 않고-_-(...그런 것이 잘 안 보이는 것도 미소녀게임적이긴 합니다만)
    주인공 성격상 그런 것에도 손을 빌리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역시 자기가 자초해서 힘든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방접종도 받으러 나가긴 해야할텐데, 그때도 뭔가 트러블은 있을 것 같군요-_-
  • 시노 2009/06/01 10:55 # 답글

    저야 내용에 상관없이 재미만 있으면 봅니다만, 이 만화 연재 소식만 듣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군요.
    이 글을 읽어 보니 어두운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개그 포인트도 어두운 부분에서 형성되는 것 같은데, 이러면 너무 읽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뭐 일단 기회가 되면 1권은 읽어 보렵니다.
  • 크로이츠 2009/06/01 21:21 #

    사실 1, 2화만 보면 캐릭터는 미소녀캐릭터인데 내용만 조금 현실적(?)일 뿐인 육아만화입니다만, 갈수록 암울해지더군요;
    개그는 별로 특별할 게 없습니다. 그냥 현시연 수준;
  • 행인 2009/06/01 18:16 # 삭제 답글

    이런 리뷰가 좋아요, 밑의 아키라씨에 관한 소개와 같이 이런 글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 크로이츠 2009/06/01 21:21 #

    음 의외로 이런 작품에 대한 수요가 있군요.
    저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농담입니다;)
  • 라그나 2009/06/01 20:17 # 답글

    예전 아르바이트로 6개월된 아이를 반년 가까이 돌본 적이 있습니다만......(얌마)
    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제 아이가 아닌데도 한 아이를 키운다고 하는 것에서 일종의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꼈었는데 말이죠ㅠㅜ.
  • 크로이츠 2009/06/01 21:23 #

    역시 '픽션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모친으로서의 준비도 덜 된 것 같고, 상황도 안 좋고, 여러모로 작가가 캐릭터를 몰아세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 액시움 2009/06/01 23:29 # 답글

    실제로 10대 엄마 중에 저런 상태에 빠지는 애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덕후 중에, 에로게에서 중출시(……) 여부를 엔딩 선택지로 놓는 걸 무지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특히나 그 '중출'이 배드엔딩으로 이어지면), 의외로 그런 게임이 현실적이었다니 ㅡㅡ;
  • 크로이츠 2009/06/01 23:49 #

    에로게에서 피임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무시되죠-_-
    BL물에서의 에로신이 비정상적으로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까...;
  • 작가 2009/06/14 09:39 # 답글

    어쩌면 3년생 혹은 4년생에서 조금더 발전한 '암울'스토리로, 육아스트레스로 한계까지 밀려 아이를 유기하거나 혹은 유아살해하는 스토리까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정도 까지 나가진 않겠죠.

    아니 혹시 몰라 키오 시모쿠니까.......!!!
  • 크로이츠 2009/06/14 22:39 #

    사실 그런 전개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만, 잡지에서 지켜야하는 '수위'가 있으니까 대놓고 나오지는 않겠죠. 버렸다가 다시 찾아가는 것 정도는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비난이 쇄도할듯;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