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6일
왜 소설을 읽는가─그리고 취향에 대한 이야기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실에 얼마든지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내가 표출하지 못했던, 아니 내 안에 있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몰랐던 욕망, 분노, 고뇌, 사랑을 맞닥뜨리게 된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괴팍하고 비현실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 페이소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일종의 대리 경험이다. 시간적・공간적・상황적 한계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하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시행착오 끝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떤 목표를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치열한 고통, 환희, 열정 등을 느끼고 감동한다. 정신적으로 자라나고 삶에 눈뜬다는 것은 때로는 아픈 경험이지만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다 가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다.
장영희씨의 문학 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머리말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가, 에 대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거의 대부분 담겨 있는 문장이라 생각해 전재합니다.
저는 라이트노벨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장르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리뷰어(?)로서는 그런 부분을 의식하고 있습니다만, 제 자신의 독서 취향에서는 항상 일반소설과 동일선상에 있었습니다. 단지 제가 선호하는 정서나 표현방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보니, 라이트노벨을 많이 읽게 된 것 뿐이죠. 그러다보니 작품외적인 요소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서 작가나 업계라든가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다니게 된 것뿐이고...
저에게 있어서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어디까지나 위에서 인용한 부분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결국 '저런 것을 원하는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라고 압축할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에서 시작해서 『종말의 크로니클』, 『은반 컬라이도스코프』, 『레진 캐스트 밀크』, 『"문학소녀"』, 『토라도라!』등은 사실 동일선상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방향성은 각각 전혀 다른 작품들이지만요.
(사실 이건 소설뿐만 아니라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입니다)
그런 반면, 이런 점에서 별다른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작품은 라이트노벨로서 퀄리티가 높고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저에게는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그런 작품이라고 해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면 좋은 얘기를 많이 합니다만, 제 자신의 독서 스타일에서 이런 작품은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편입니다(제가 『풀메탈패닉』이라든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등 일부 메이저작품에 대해서 거의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물론 예외야 있겠습니다만...
물론 어떤 작품을 평가할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다수의 시선에 가깝게) 보려고 하고 있기 제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깎아내리는 일은 최대한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리뷰어가 가장 조심해야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취향을 마치 객관적인 판단처럼 취급해서 어떤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끔 제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해도 부당하게 까인다 싶으면 열심히 옹호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만...
하여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냐 하면...
1) 제 블로그는 이런 성향이니 그런 점을 감안하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취향이라는 것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걸 절대적인 잣대로 삼아 특정 대상을 공격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총총.
# by | 2008/07/06 16:32 | □ 인용해서 이야기하기 | 트랙백(3)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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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제대로 실천하시는 분을 본 적은 거의 없는듯...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정말 좋은 책이죠. 개인적으로는 어두침침한 군생활 초반에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내가 어떻게 느꼈는가.'가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느낄것인가'에 대해서 신경쓰신다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작품을 평하는데 있어서 취향을 굉장히 많이 타는 편인듯합니다.
(다만, 그 취향이 넓은편이라.. (먼산))
사실, 작품에 대해 적음에 있어서 취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취향이라는게, 크게는 '좋다' '나쁘다'에서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어떤 한 장면을 놓고도 '느긋하고 평화로운 연출'에서부터
'약간 지루한 연출'까지, 미묘하게 다른 평가를 내릴수도 있으니..
그러니까, 작품을 평하는데 있어서 취향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보는데,
과연, 그걸 '절대적인 잣대'로 삼는 단계는 어떤 단계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불안하네요. 제 글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자유로울지..
예를 들어 은반 컬라이도스코프의 1, 2권이라면 스케이트묘사에 일종의 스토리를 부여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한 부분이라든가, 주인공을 좀 못된 성격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녀의 좌절이나 노력을 더 부각시킨 부분 등을 들 수 있겠죠. 은반 컬라이도스코프라는 작품이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은반 컬라이도스코프라는 작품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이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 대해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그 이유를 찾아내서 알기 쉬운 언어로서 표현하는 것에 리뷰 내지는 비평의 재미가 있는 것이고, 객관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취향'이 개입될 부분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호불호를 가리는 게 아니라 일종의 분석을 하는 것이니까요(물론 어느 정도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만). 무엇이 좋았다 나빴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특징이 있는지 찾아내서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찾아낸 특징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예를 들어 은반 1권의 스케이트 묘사를 보고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찾아낸 특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의견이 갈릴 만한 부분이고, 그게 개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의견 차이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사화린님의 예시를 빌리자면) '느긋하고 평화로운 연출이 특징이지만,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약간 지루한 연출로 느껴질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쓰면 되는 것이고요.
물론 어떤 작품을 좋게 생각한다면 좋은 점을 더 많이 찾아서 얘기하게 되고, 나쁘게 생각한다면 나쁜 점을 더 많이 찾아서 얘기하게 되겠죠. 하지만 이와 같은 부분을 의식하고 어떤 작품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어느정도 최저한의 객관성은 확보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비공개님이 전재해주신 것 같은 '(내가 보기에) 이 부분의 전개는 정말 말도 안 된다. 이 작품은 정말 형편없다'식의 감상 및 리뷰를 가장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런 건 정말로 자기 취향이나 사고방식에 안 맞았던 걸 객관적인 판단으로 생각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이니까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보고 '미국인이 총질하고 다 때려부순다고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 같아?'라고 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평가를 한다면 묘사의 밀도, 복선의 사용, 대사의 삽입방식, 클라이맥스의 연출 기법 같은 것을 대상으로 삼아야지, 작품에 담겨있는 정서나 시선, 작가가 선택한 사건의 해결방식, 등장인물의 사고방식 같은 걸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는 건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나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이런 내용의 소설은 싫어한다, 라고 말하는 건 자유입니다. 그건 정말로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의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이유로 '이건 정말 희대의 불쏘시개다. 읽지 마라.'라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오만이죠. 대체 자신에게 무슨 권위가 있다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지, 저로서는 정말로 편협하고 섣부른 발언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저는 '이건 이러저러해서 정말로 좋은 작품이니 반드시 읽어야한다'라는 식으로 불특정다수에 대해서 말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특징을 갖고 있는 소설이니 그런 부분에 흥미를 느낀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읽으면서도 이런저런 특징에 주목하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가 올바른 스탠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것도 제 주관이긴 하겠습니다만, 적어도 객관적이고자 하는 의식, 그리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만 갖추어진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감상&비평문화가 형성될 거라고 봅니다.
크로이츠님의 감상은 항상 작품에 예의를 갖추고 객관적이고자 하는 노력이 어려있어서 좋은 감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단순한 '개인소비'로서의 감상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갖춘 감상&비평 문화가 널리 형성됐으면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일단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또 공부는 커녕 알려고 하거나 한적도 없이 그저 내 취향은 이게 아냐... 라고 하는 분들이 대다수인것 같아요.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름의 매력이 있듯이 세상 무엇에든 아름다움은 존재합니다. 그것만의 매력을 정확히 느낀 다음..취향을 논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단지 즐기고 감동 얻고, 어떤 작품에서든 나름의 장점을 취해서 각자 좋았다면 된다고 봅니다. 자기 취향을 객관적인 현실로 착각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불필요한 횡포일 뿐이겠지요.
섬세하고 객관적이며 재미난 비평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세계에까지 선악의 기준을 적용하며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작품을 "이건 쓰레기야! 보지 마! 보고 재밌다는 인간들은 저질!" 이런 건 비평이 아니라 화풀이일 뿐이겠지요. 자신은 재미 없었다거나 이런 저런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구체적으로 자기 감상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화풀이 욕설 수준에 그친다면 그런 건 비평이라 말하기 힘들 겁니다.
예술작품 갖고 열내지 말고, 나름대로 즐기며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가령 어떤 작품은 의심의 여지없는 3류라서 그 작품을 삼류라고 칭했건만(백합물, BL물 등등) 이런 취향의 사람들은 왜 이 작품이 삼류라면서 덤벼드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한국사람들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객관적인 작품성의 부재와 개인 취향의 차이 정도는 충분히 구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요?
결국 그 사람들의 황당무개한 논리에 맞서려면 윤리학까지 들먹여야 합니다. 개탄할만한 현실이죠,
이 경우 정말로 타인을 존중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타인이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까지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비난'은 '자신에 대한 비난'과 다르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정신적 성숙도 필요하겠죠.
세상에 <토마토 공격대>를 인생의 영화라고 생각하며 성서처럼 떠받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건 간에 <토마토 공격대>는 쓰레기같은 영화고 이 사실에 취향 같은 건 끼어 들 여지가 없죠. 뭐 이런 경우도 있는 겁니다.
작품 리뷰에 대한 관점은 저와 크로이츠님간에 사뭇 다른 차이가 있지만 여기에서 더 이야기하지는 않도록 하죠. 크로이츠님의 일본 라이트노벨 소개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