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유우『레진 캐스트 밀크』 최종 감상 by 크로이츠

후지와라 유우『레진 캐스트 밀크』 소개
후지와라 유우『레진 캐스트 밀크』 6권 감상
후지와라 유우『레진 캐스트 밀크』 7권 감상




『레진 캐스트 밀크』는 라이트노벨 역사상 가장 잔혹한 작품 중 하나다. 특별히 잔인한 묘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안이한 해피엔딩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그 작풍은 분명 잔혹하다고 할만 한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던 비틀어진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교차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극한까지 묘사하면서 회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만든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이런 상황을 극적인 전개를 통해 해결하여 강한 카타르시스를 주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그런 기적이 극히 드물다. 사건이 해결되어도 항상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상실을 감수해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진 캐스트 밀크』가 단순히 악취미적이기만 한 소설인 것은 아니다.


처음에 『레진 캐스트 밀크』 1권을 읽고 나는 상당히 흥분했다.
누군가가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원했을 때 만들어지는 가공세계 캐스트(虛軸). 그 캐스트의 힘을 얻으면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소년소녀들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싸우는 이야기. 푸딩을 좋아하는 건방진 기계소녀 히로인도 귀여웠고, 계속해서 농밀한 감정이 부딪히면서 진행되는 소설로서의 높은 밀도도 마음에 들었다. 후반부에서 드러난 마이즈루 미츠의 의외의 모습도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정말로 '너무 심했다'.
겉은 달콤한 학원물처럼 포장해놓고는, 그 속에서 씁쓸하다 못해 구역질나는 상황을 설정해두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소재들을 사용해서 등장인물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절실한 문장을 통해 그들의 아프고 비틀어진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을 전혀 해결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물론 이게 전부였으면 나는 이 소설을 그냥 악취미적인 작품으로 단정하고 눈살만 찌푸렸을 것이다. 하지만 『레진 캐스트 밀크』는 그걸로 끝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키라를 대하는 리오의 상냥한 마음과, 모든 사람을 적의로 대하던 미츠가 숨기고 있던 사실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면서 쇼코가 생각했던 그 독백.
그 속에 담겨있던 깊은 슬픔과 애틋한 마음을 느낀 나는, 이 잔혹한 이야기가 단순히 잔혹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했다. 이 잔혹한 이야기를 계속 읽으면, 그 무엇보다 가슴 아프면서 감동적인 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 녀석들이 눈물과 아픔을 견뎌내며 소중한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곳은 분명 눈물을 흘릴 가치가 있을 정도로 빛나는 곳일 거라고.


그리고 그 기대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4권 마지막에서 아키라가 던진 말과, 퉁명스럽게 대꾸한 미츠가 보인 모습. 비록 처참한 비극 속에 홀로 남겨진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분명히 존재했던 자그마한 해피엔딩.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아픔을 짊어지고 있었던 소녀가 수없이 상처입고 한없이 피 흘리면서, 길고 긴 비극 속에서 잠깐이나마 지켜낸 미소.
책을 덮으면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소녀들이, 힘겹게, 정말로 힘겹게 상처투성이의 해피엔딩을 얻어내는 이야기라는 걸.
그 해피엔딩이 다른 작품이라면 배드엔딩에 속하는 것일지라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눈물은 분명히 진실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가 마이즈루 미츠였다. 한없이 착한 리오도 좋고, 귀엽고 건방진 쇼코도 좋고, 코토코와 네아도 좋지만, 역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건 마이즈루 미츠다.
마이즈루 미츠. 상처입고 상처입히는 것으로밖에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없는 소녀. 메인주인공커플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가장 자주 망가지고 괴롭힘 당하는 '데레가 없는 츤데레'.
'백합'이라는 단어를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마이즈루 미츠는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의 사토 세이 이후 나에게 가장 와닿은 '백합 캐릭터'였다. 나오카와 키미코와의 관계도, 하야미 코토코와의 관계도, 그리고 리오, 쇼코, 네아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지금의 나에게는 되새길 때마다 감정이 복받치는 이야기이다.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기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녀.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투를 뿐이었던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항상 가슴이 아팠다.


나는 좋아하는 작품들이 완결될 때마다, '행복하게 되어서 다행이다'와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다.
다만 『레진 캐스트 밀크』는 마지막 후일담까지 읽은 지금도, '행복하게 되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해주기가 어렵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잘 견뎌주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주어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아줬다는 게, 그저 고마웠다.




아키라. 쇼코. 리오. 미츠. 코토코. 네아.
정말로, 수고했다. 고마워.




PS,
곧 국내에도 나올 작품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국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금 걱정된다. 안 그래도 1권은 전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지독한 권인데(2권부터는 조금 방향성이 바뀐다), 1권에서 내던지는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 『단장의 그림』은 별다른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건 좀 타입이 다르니 예상하기 힘들다.
등장인물에게 깊은 애착을 갖거나 감정이입해서 즐기는 타입이라면(+백합물 좋아한다면), 이건 좀 아닌데, 라고 느끼더라도 4권까지는 읽어줬으면 한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4권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 '하얀 꽃잎'과 동격.
물론 욕심을 부리자면 클라이맥스인 7권, 아니 마지막 단편집의 후일담까지 읽어줬으면 하지만. ...솔직히 4권과 7권을 읽기 위해서라도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은 심정이다.

덧글

  • 소하 2008/02/05 02:56 # 답글

    아앗 결국 나오는건가요. 반드시 구입하겠습니다 +_+
  • 민승아 2008/02/05 03:03 # 답글

    초반부 읽다가 원서로 사야하나!!! 싶었는데 정발이 나온다니 다행이네요...랄까 그런 작품이면 번역 부분에서 훼손이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 할까 조금 걱정입니다.
  • 크라스갈드 2008/02/05 03:39 # 답글

    룸 넘버도 4권 까지는 읽어야 하는 법이죠.
  • 엘샤드 2008/02/05 04:21 # 답글

    오..나오는건가보군요.
    기대기대.
  • 하쿠시츠키 2008/02/05 08:42 # 답글

    후지와라 유우의 비극은 첫 작품인 '루나틱 문'에서부터 어느 정도 바탕이 깔려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루나틱 문'의 비극은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상투적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 잃는 것, 어긋난 것이 많고, 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계기나 작은 것이었다는 것... 어쩌면 '레진캐스트밀크'를 만들기 위한 밑준비가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번서가 나오든 말든... 일어가 가능한 이상 원서를 읽습니다!)
  • 토우 2008/02/05 08:49 # 답글

    정발 예정인가요-. 으음... 고민되네요-. 표지만 보면 정말 그냥 알콩달콩한 학원물 같은?!
  • 피오레 2008/02/05 09:20 # 답글

    단장의 그림이 의외로 나가주는 덕분에 나오는 걸까요. 하지만 캐릭터 괴롭히기는 레진캐스트밀크 쪽이 더... 읽는 사람까지 괴롭게 만들 정도인 것 같으니 반응이 어떨지;;
  • 시오、 2008/02/05 09:21 # 답글

    정발예정! 토라도라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일단 기대중입니다만.... 1권이 제일 지독하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의외로 어두운 백합계열을 선호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 독자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튼 번역이 잘 되서 나오면 좋겠네요.
  • zZ쿨쿨Zz 2008/02/05 10:48 # 답글

    이렇게 멋진 리뷰를 보면 꼭 사보고 싶지만,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읽는 동안 너무 괴롭지 않을까 벌써 걱정입니다. 흑흑.
    p.s 백합만세
  • Dalpang-e 2008/02/05 10:56 # 답글

    정발 예정인가요, 흥미가 생기는군요
  • 아울베어 2008/02/05 11:54 # 답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런 이미지가 느껴지는군요.
  • 수아 2008/02/08 17:29 # 삭제 답글

    와, 드디어 정발되는 건가요!
  • 타즈 2008/02/08 20:58 # 답글

    이거 죽자는 심정으로 북오프에서 집어왔는데
    ...4권까지나 논스톱으로 달려야되는겁니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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