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시드노벨이 창간되어 한국산 라이트노벨이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다른 출판사들도 차례차례 라이트노벨 업계에 잠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라이트노벨이라는 형식 자체도 장르문학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하지만 시드노벨의 창간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던 라이트노벨의 정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라이트노벨에 대해 의견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작가 지망생들도 라이트노벨이 어떤 것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라이트노벨로서 출간된 각 작품들에 대해서도 라이트노벨로서 걸맞은 작품인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접해온 라이트노벨 관련 서적, 연구를 참고하여, 라이트노벨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라이트노벨에 대해 논할 때는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1] ‘라이트노벨’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라이트노벨의 본질을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출판사나 매스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특정 작품군을 분류하기 위해 일부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널리 쓰이는 명칭이 아니었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면, 그 기원은 19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소노라마문고, 코발트문고, 스니커문고, 후지미판타지아문고 등에 의해 새로운 성격의 작품군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이런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 당시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작품은 SF, 판타지를 소재로 삼고 있어도 종래의 SF, 판타지 소설과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고, 그렇다고 해서 주니어소설, 쥬브나일, 영어덜트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대상연령이나 내용에 대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작품을 부를 새로운 단어가 요구되었는데, 결국 일본의 PC통신서비스인 니프티서브에서 SF판타지게시판을 각 장르별로 분할하면서 이런 종류의 작품군에 대한 새로운 명칭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SF판타지게시판의 관리자를 맡고 있던 카미키타 케이타에 의해, ‘라이트노벨’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붙여진 게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카미키타 케이타 본인에 의하면 이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은 깊은 생각 없이 문득 떠오른 단어를 붙인 것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라이트노벨 외에도 니트노벨(neat. 깔끔한, 산뜻한, 멋진. ※NEET와는 무관계), 패스트(퍼스트)노벨(fast, first. 빨리 읽을 수 있는, 처음 읽기 좋은)이라는 단어도 후보였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라이트노벨’이 직역한 의미로 ‘가벼운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라이트노벨의 내용 자체가 어떻다기보다는 독자가 접근하기 쉬운(일러스트가 사용되었다는 점 등으로), 신간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 경쾌하게 진행되는, 문고로 출판되기 때문에 저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라이트노벨’인 것이다.
가벼운 소설이라고 하면 ‘깊은 내용이 없는’, ‘문학적인 가치가 없는’, ‘심심풀이로 읽는’ 등의 이미지를 갖기 쉽지만, 원래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의 ‘가벼운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 것이다. 이는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가벼운 소설’이라는 이미지로서 사용되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이름은 본질을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소설(小說)이라는 단어 자체가 큰 뜻을 담지 않은 조잡한 글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트노벨을 단순히 ‘가벼운 소설’이라고 해석하고 어떤 논지를 전개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창작자에게는 무의미한 ‘라이트노벨’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의 탄생과정에서 알 수 있는 또다른 사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독자들의 필요성에 의해 일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실제 라이트노벨을 만드는 작가나 출판사의 생각과는 전혀 무관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작가, 출판사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딱히 어떤 장르에 속하는 소설을 만들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작가와 출판사는 그저 재미있는, 잘 팔리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을 뿐으로, 현재 라이트노벨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일러스트조차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디자인으로서 사용했을 뿐이었다.
이런 점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작가, 편집자들은 특별히 라이트노벨을 만든다는 의식은 갖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 잘 팔리는 소설을 만들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독자들이 호응해주는 소설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노하우가 갖춰져 있으며, 그 다양한 노하우를 적용시킨 결과 지금처럼 특정한 경향을 지닌 작품군이 형성되었을 뿐이다. 그런 노하우, 경향과는 무관하게 출간되는 라이트노벨과도 적지 않다.
사실 라이트노벨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반화된 것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도 한참 훗날의 일로, 1988년에 창간된 일본 최대의 라이트노벨 잡지 『드래곤매거진』에서는 창간 이후 10여년 동안 지면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쓴 적이 없으며 오츠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2003년)에서도 ‘캐릭터소설’, ‘스니커문고 같은 소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에게 있어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하나의 시장을 형성한 현재는 작가와 출판사에서도 ‘라이트노벨’을 의식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시장이 주목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도 라이트노벨은 이래야 한다, 라이트노벨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라는 식의 인식은 없다. 단지 라이트노벨 업계라는 시장 속에서 라이트노벨 독자를 상대로 재미있는 책, 감동적인 책을 만들어서 팔 뿐이다.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감동적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소설의 스타일은 존재하지만, 라이트노벨은 어떤 내용을 갖춰야만,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만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식의 규정은 없는 것이다.
[3] ‘라이트노벨’의 본질이란
이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라이트노벨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트노벨이라는 형식과 라이트노벨 독자, 라이트노벨 업계는 존재하지만, 이것이 바로 라이트노벨이다, 라는 식의 확실한 정의는 없다.
그 대체적인 경향을 설명하자면 일러스트가 사용되고 있으며 젊은 층, 특히 오타쿠 문화를 즐기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오락소설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지만, 명확히 라이트노벨을 정의할 만한 어떤 형식이나 수준은 없다. 수년전까지는 오츠카 에이지가 제창한 ‘현실 세계를 묘사 대상으로 삼는 일반 소설과는 달리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묘사 대상으로 삼는다.’라는 지적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최근의 라이트노벨과 일반 대중소설 업계의 경향을 살펴보면 이 이론도 적합하지 않다.
라이트노벨이란 독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시장에서 창작, 소비되고 있는 책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어떤 내용이나 작품성을 갖고 있는 소설을 라이트노벨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노벨 중에서는 에로게나 소년만화에 가까운 내용을 지닌 소설도 있지만, 일반 대중소설보다 순문학에 가까운 요소를 지닌 소설도 있다. 미소녀 모에 중심의 소설도 있지만 오타쿠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는 드라이한 소설도 있다. 영화라는 매체에 헐리우드 액션영화부터 달달한 연애영화나 정적인 예술영화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라이트노벨도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트노벨을 가벼운 소설, 내지는 상업적인 소설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과 상업성의 의미는 대중소설 전반이 갖추고 있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인식해둬야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읽어온 작품들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라이트노벨의 내용이 어떤 경향을 갖고 있다고 인식했다면, 그건 단순히 자신이 그런 종류의 작품만 골라 읽었거나 최근의 독자들이 그런 내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일반 대중소설에도 해당되는 얘기로, 라이트노벨과 일반 대중소설 사이에는 독자층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라이트노벨이 어떤 작품성이나 퀄리티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일반 대중소설이 장대한 이야기를 그린 대하장편소설에서 10대소녀를 위한 가벼운 연애소설까지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듯, 라이트노벨 안에서도 그 성향은 작품에 따라 천지차이다.
라이트노벨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기법, 형식 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라이트노벨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라이트노벨을 정의하거나 그 본질을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참고로 라이트노벨의 편집자는 아니지만 전격문고 계열 라이트노벨의 만화화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편집자는, 일본에서도 가끔씩 일어나는 라이트노벨의 정의에 대한 논쟁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지만, 우리들(편집자)과 작가는 그런 거 생각하면서 책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라이트노벨의 본질에 대해서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4] 어째서 라이트노벨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가
일본에서도 가끔씩 라이트노벨의 정의나 성격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지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자주, 그리고 비생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애초에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양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읽던 어떤 소설들을 뭉뚱그려서 취급하다가 라이트노벨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일본 독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했던 소설들이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소설들을 포괄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업계 외부의 사람들만이 라이트노벨을 정의하고 해석하려 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라이트노벨 독자나 작가에게 있어서는 관심도 없고 관계도 없는 얘기일 뿐이다. 소설은 각자 나름대로 재미있거나 감동적이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때문에 굳이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독자층이 형성되기 전에 NT노벨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단어가 먼저 정착되었다. 대충 이러저러한 내용을 포괄하는 소설이다, 라고 애매하면서도 공통되어 있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이라는 개념이 주어졌을 때 사람마다 불확실한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 정의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이 독자들의 필요성이 아니라 출판사측의 필요성에 의해 도입되었다. 정체되어 있는 판타지소설 업계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출판사들이 눈을 돌린 것이 일본에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라이트노벨이었고,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이 어떤 것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서 출판사는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라이트노벨의 명확한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에게 있어서도 라이트노벨이란 상당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판타지소설은 일단 배경을 판타지세계로 삼으면 됐지만, 라이트노벨은 어떻게 쓰면 되는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 작품을 답습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떻게 해야 기본적인 조건을 클리어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뿐만 아니라 창작자측에서도 라이트노벨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았다. 라이트노벨이란 단순히 라이트노벨이라는 시장 속에서 독자를 즐겁게 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소설에 지나지 않는데, 그 본질에 대해서 논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작품성’이나 ‘필력’처럼 명확한 판단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인상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단어를 갖고 작품을 재단하는 자칭 비평가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품성이나 필력 등은 이론적인 근거를 통해 파악하기가 어려운 요소로, 그 단어가 주는 거창하면서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도 ‘인상비평’이라 불리며 문예비평의 한 가지로 취급되지만, 이것은 비평자가 상당한 소양과 견식을 갖지 않으면 비평으로서는 작품의 본질을 전혀 꿰뚫어보지 못하는 무가치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상당히 무책임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호평보다는 불평에 사용되기 쉬운데,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설명하기가 곤란할 경우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불평이 나오는 사례는, 대부분 단순히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인 경우가 많다. 간단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스타일의 소설에 대해 작품성이나 필력이 떨어진다면서 작품으로서의 질이 낮다고 비평하는 식이다. 혹은 속도감 있는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육중하며 복잡한 전투묘사를 지향한 작품을 비하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이 소설은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를 ‘이 소설은 글솜씨가 떨어진다’라고 말해버리는 무책임한 비평문화가, 현재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만연해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불평은 별다른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파급되는 경향이 있으며. ‘신랄한 비평일수록 작가와 출판사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자칭 비평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창작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당한 악평으로 인해 판매량을 떨어뜨릴 뿐이다.
(물론 특정 작품이 호평을 받거나 불평을 받고 있을 경우, 그 원인을 분석하여 라이트노벨로서 이런 점이 뛰어나서 혹은 떨어져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재미없었던 이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비평하는 행위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켜 독자와 작가 양쪽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행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책임하면서 불분명한 비평문화는 라이트노벨의 본질에 관련된 논쟁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불명확한 기준을 적용해 라이트노벨을 정의, 혹은 비하하려 하거나, 자신이 정한 라이트노벨의 규격에 맞지 않으면 특정 작품을 깎아내리는 식의 비평이 허다하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법, 형식 등이 있을 뿐, 라이트노벨이 갖춰야할 기본이나 규격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정의하려고 하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작품을 비평한다. 작품성이나 스토리의 무게 등 불명확한 요소를 근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논쟁을 해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어떤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5] 성숙한 감상 및 비평문화를 바라며
애초에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흥미롭다’, ‘몰입된다’, ‘감동적이다’, ‘느낀 바가 많았다’ 등을 대입해도 된다.
요컨대 소설을 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 독자에게 어떤 만족을 주느냐, 라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감동적이었다’, ‘많은 것을 느꼈다’, 이런 식의 감상을 표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 비평의 첫걸음이다. 그렇게 느낀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수록, 좋은 비평이 된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미가 없거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경우, 그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면 된다. 다만, ‘나는 재미없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왜 재미있었는지(혹은 재미없었는지),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왜 재미있다고 하는지(혹은 왜 재미없다고 하는지), 이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해보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비평문화의 시발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그리고 이해할 때 도움이 되며, 작가와 출판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보려는 노력을 방치하고, 애매한 단어로 작품의 가치를 단정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낳지 않는 무책임한 행위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표현할 수준의 얘기를, 작품성의 부족이나 작가 및 편집부의 능력부족 같은 단정으로 비약시키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다.
또한 명확히 판단하기 힘든 장르의 본질, 작품성 등에 대해서 불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며 왈가왈부하는 것도 피해야할 것이다. 분명 어떤 대상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더 나은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주장이 몰이해나 편견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주장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는 파악한 뒤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인터넷을 통한 의견 교류가 활발하다. 보다 나은 감상 및 비평문화가 확립되고 창작자측에도 피드백될 수 있다면, 앞으로의 한국 라이트노벨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드노벨이 창간되어 한국산 라이트노벨이 정식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다. 다른 출판사들도 차례차례 라이트노벨 업계에 잠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라이트노벨이라는 형식 자체도 장르문학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하지만 시드노벨의 창간을 전후하여 시작되었던 라이트노벨의 정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라이트노벨에 대해 의견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작가 지망생들도 라이트노벨이 어떤 것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라이트노벨로서 출간된 각 작품들에 대해서도 라이트노벨로서 걸맞은 작품인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접해온 라이트노벨 관련 서적, 연구를 참고하여, 라이트노벨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라이트노벨에 대해 논할 때는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1] ‘라이트노벨’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라이트노벨의 본질을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출판사나 매스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특정 작품군을 분류하기 위해 일부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널리 쓰이는 명칭이 아니었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면, 그 기원은 19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소노라마문고, 코발트문고, 스니커문고, 후지미판타지아문고 등에 의해 새로운 성격의 작품군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이런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 당시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작품은 SF, 판타지를 소재로 삼고 있어도 종래의 SF, 판타지 소설과는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고, 그렇다고 해서 주니어소설, 쥬브나일, 영어덜트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대상연령이나 내용에 대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작품을 부를 새로운 단어가 요구되었는데, 결국 일본의 PC통신서비스인 니프티서브에서 SF판타지게시판을 각 장르별로 분할하면서 이런 종류의 작품군에 대한 새로운 명칭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SF판타지게시판의 관리자를 맡고 있던 카미키타 케이타에 의해, ‘라이트노벨’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붙여진 게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카미키타 케이타 본인에 의하면 이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은 깊은 생각 없이 문득 떠오른 단어를 붙인 것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라이트노벨 외에도 니트노벨(neat. 깔끔한, 산뜻한, 멋진. ※NEET와는 무관계), 패스트(퍼스트)노벨(fast, first. 빨리 읽을 수 있는, 처음 읽기 좋은)이라는 단어도 후보였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라이트노벨’이 직역한 의미로 ‘가벼운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라이트노벨의 내용 자체가 어떻다기보다는 독자가 접근하기 쉬운(일러스트가 사용되었다는 점 등으로), 신간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 경쾌하게 진행되는, 문고로 출판되기 때문에 저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라이트노벨’인 것이다.
가벼운 소설이라고 하면 ‘깊은 내용이 없는’, ‘문학적인 가치가 없는’, ‘심심풀이로 읽는’ 등의 이미지를 갖기 쉽지만, 원래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의 ‘가벼운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 것이다. 이는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가벼운 소설’이라는 이미지로서 사용되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이름은 본질을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소설(小說)이라는 단어 자체가 큰 뜻을 담지 않은 조잡한 글이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트노벨을 단순히 ‘가벼운 소설’이라고 해석하고 어떤 논지를 전개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창작자에게는 무의미한 ‘라이트노벨’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의 탄생과정에서 알 수 있는 또다른 사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독자들의 필요성에 의해 일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실제 라이트노벨을 만드는 작가나 출판사의 생각과는 전혀 무관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작가, 출판사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딱히 어떤 장르에 속하는 소설을 만들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작가와 출판사는 그저 재미있는, 잘 팔리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을 뿐으로, 현재 라이트노벨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일러스트조차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디자인으로서 사용했을 뿐이었다.
이런 점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작가, 편집자들은 특별히 라이트노벨을 만든다는 의식은 갖고 있지 않으며,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 잘 팔리는 소설을 만들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독자들이 호응해주는 소설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노하우가 갖춰져 있으며, 그 다양한 노하우를 적용시킨 결과 지금처럼 특정한 경향을 지닌 작품군이 형성되었을 뿐이다. 그런 노하우, 경향과는 무관하게 출간되는 라이트노벨과도 적지 않다.
사실 라이트노벨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반화된 것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도 한참 훗날의 일로, 1988년에 창간된 일본 최대의 라이트노벨 잡지 『드래곤매거진』에서는 창간 이후 10여년 동안 지면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쓴 적이 없으며 오츠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2003년)에서도 ‘캐릭터소설’, ‘스니커문고 같은 소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에게 있어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하나의 시장을 형성한 현재는 작가와 출판사에서도 ‘라이트노벨’을 의식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시장이 주목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도 라이트노벨은 이래야 한다, 라이트노벨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라는 식의 인식은 없다. 단지 라이트노벨 업계라는 시장 속에서 라이트노벨 독자를 상대로 재미있는 책, 감동적인 책을 만들어서 팔 뿐이다.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감동적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소설의 스타일은 존재하지만, 라이트노벨은 어떤 내용을 갖춰야만,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만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식의 규정은 없는 것이다.
[3] ‘라이트노벨’의 본질이란
이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라이트노벨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트노벨이라는 형식과 라이트노벨 독자, 라이트노벨 업계는 존재하지만, 이것이 바로 라이트노벨이다, 라는 식의 확실한 정의는 없다.
그 대체적인 경향을 설명하자면 일러스트가 사용되고 있으며 젊은 층, 특히 오타쿠 문화를 즐기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오락소설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지만, 명확히 라이트노벨을 정의할 만한 어떤 형식이나 수준은 없다. 수년전까지는 오츠카 에이지가 제창한 ‘현실 세계를 묘사 대상으로 삼는 일반 소설과는 달리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묘사 대상으로 삼는다.’라는 지적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최근의 라이트노벨과 일반 대중소설 업계의 경향을 살펴보면 이 이론도 적합하지 않다.
라이트노벨이란 독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시장에서 창작, 소비되고 있는 책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어떤 내용이나 작품성을 갖고 있는 소설을 라이트노벨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노벨 중에서는 에로게나 소년만화에 가까운 내용을 지닌 소설도 있지만, 일반 대중소설보다 순문학에 가까운 요소를 지닌 소설도 있다. 미소녀 모에 중심의 소설도 있지만 오타쿠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는 드라이한 소설도 있다. 영화라는 매체에 헐리우드 액션영화부터 달달한 연애영화나 정적인 예술영화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듯이, 라이트노벨도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트노벨을 가벼운 소설, 내지는 상업적인 소설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과 상업성의 의미는 대중소설 전반이 갖추고 있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인식해둬야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읽어온 작품들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라이트노벨의 내용이 어떤 경향을 갖고 있다고 인식했다면, 그건 단순히 자신이 그런 종류의 작품만 골라 읽었거나 최근의 독자들이 그런 내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일반 대중소설에도 해당되는 얘기로, 라이트노벨과 일반 대중소설 사이에는 독자층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라이트노벨이 어떤 작품성이나 퀄리티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일반 대중소설이 장대한 이야기를 그린 대하장편소설에서 10대소녀를 위한 가벼운 연애소설까지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듯, 라이트노벨 안에서도 그 성향은 작품에 따라 천지차이다.
라이트노벨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기법, 형식 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라이트노벨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라이트노벨을 정의하거나 그 본질을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참고로 라이트노벨의 편집자는 아니지만 전격문고 계열 라이트노벨의 만화화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편집자는, 일본에서도 가끔씩 일어나는 라이트노벨의 정의에 대한 논쟁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지만, 우리들(편집자)과 작가는 그런 거 생각하면서 책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라이트노벨의 본질에 대해서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4] 어째서 라이트노벨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는가
일본에서도 가끔씩 라이트노벨의 정의나 성격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지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자주, 그리고 비생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애초에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양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읽던 어떤 소설들을 뭉뚱그려서 취급하다가 라이트노벨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일본 독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했던 소설들이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소설들을 포괄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업계 외부의 사람들만이 라이트노벨을 정의하고 해석하려 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라이트노벨 독자나 작가에게 있어서는 관심도 없고 관계도 없는 얘기일 뿐이다. 소설은 각자 나름대로 재미있거나 감동적이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때문에 굳이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독자층이 형성되기 전에 NT노벨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단어가 먼저 정착되었다. 대충 이러저러한 내용을 포괄하는 소설이다, 라고 애매하면서도 공통되어 있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이라는 개념이 주어졌을 때 사람마다 불확실한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 정의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이 독자들의 필요성이 아니라 출판사측의 필요성에 의해 도입되었다. 정체되어 있는 판타지소설 업계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출판사들이 눈을 돌린 것이 일본에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라이트노벨이었고,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라이트노벨이라는 명칭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이 어떤 것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서 출판사는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라이트노벨의 명확한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에게 있어서도 라이트노벨이란 상당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판타지소설은 일단 배경을 판타지세계로 삼으면 됐지만, 라이트노벨은 어떻게 쓰면 되는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 작품을 답습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떻게 해야 기본적인 조건을 클리어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뿐만 아니라 창작자측에서도 라이트노벨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았다. 라이트노벨이란 단순히 라이트노벨이라는 시장 속에서 독자를 즐겁게 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소설에 지나지 않는데, 그 본질에 대해서 논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작품성’이나 ‘필력’처럼 명확한 판단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인상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단어를 갖고 작품을 재단하는 자칭 비평가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품성이나 필력 등은 이론적인 근거를 통해 파악하기가 어려운 요소로, 그 단어가 주는 거창하면서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도 ‘인상비평’이라 불리며 문예비평의 한 가지로 취급되지만, 이것은 비평자가 상당한 소양과 견식을 갖지 않으면 비평으로서는 작품의 본질을 전혀 꿰뚫어보지 못하는 무가치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상당히 무책임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호평보다는 불평에 사용되기 쉬운데,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설명하기가 곤란할 경우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불평이 나오는 사례는, 대부분 단순히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인 경우가 많다. 간단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스타일의 소설에 대해 작품성이나 필력이 떨어진다면서 작품으로서의 질이 낮다고 비평하는 식이다. 혹은 속도감 있는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육중하며 복잡한 전투묘사를 지향한 작품을 비하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이 소설은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를 ‘이 소설은 글솜씨가 떨어진다’라고 말해버리는 무책임한 비평문화가, 현재 한국 인터넷상에서는 만연해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불평은 별다른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파급되는 경향이 있으며. ‘신랄한 비평일수록 작가와 출판사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자칭 비평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창작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당한 악평으로 인해 판매량을 떨어뜨릴 뿐이다.
(물론 특정 작품이 호평을 받거나 불평을 받고 있을 경우, 그 원인을 분석하여 라이트노벨로서 이런 점이 뛰어나서 혹은 떨어져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재미없었던 이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비평하는 행위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켜 독자와 작가 양쪽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행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책임하면서 불분명한 비평문화는 라이트노벨의 본질에 관련된 논쟁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불명확한 기준을 적용해 라이트노벨을 정의, 혹은 비하하려 하거나, 자신이 정한 라이트노벨의 규격에 맞지 않으면 특정 작품을 깎아내리는 식의 비평이 허다하다.
라이트노벨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기법, 형식 등이 있을 뿐, 라이트노벨이 갖춰야할 기본이나 규격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정의하려고 하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작품을 비평한다. 작품성이나 스토리의 무게 등 불명확한 요소를 근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논쟁을 해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어떤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5] 성숙한 감상 및 비평문화를 바라며
애초에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흥미롭다’, ‘몰입된다’, ‘감동적이다’, ‘느낀 바가 많았다’ 등을 대입해도 된다.
요컨대 소설을 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이 독자에게 어떤 만족을 주느냐, 라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감동적이었다’, ‘많은 것을 느꼈다’, 이런 식의 감상을 표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 비평의 첫걸음이다. 그렇게 느낀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수록, 좋은 비평이 된다.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미가 없거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경우, 그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면 된다. 다만, ‘나는 재미없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가 왜 재미있었는지(혹은 재미없었는지),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왜 재미있다고 하는지(혹은 왜 재미없다고 하는지), 이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해보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비평문화의 시발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그리고 이해할 때 도움이 되며, 작가와 출판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보려는 노력을 방치하고, 애매한 단어로 작품의 가치를 단정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낳지 않는 무책임한 행위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표현할 수준의 얘기를, 작품성의 부족이나 작가 및 편집부의 능력부족 같은 단정으로 비약시키는 것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다.
또한 명확히 판단하기 힘든 장르의 본질, 작품성 등에 대해서 불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며 왈가왈부하는 것도 피해야할 것이다. 분명 어떤 대상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더 나은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주장이 몰이해나 편견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주장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는 파악한 뒤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인터넷을 통한 의견 교류가 활발하다. 보다 나은 감상 및 비평문화가 확립되고 창작자측에도 피드백될 수 있다면, 앞으로의 한국 라이트노벨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 : 라이트노벨



덧글
츠키 2008/01/07 21:09 # 답글
제가 느끼는 라노벨이 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군요...민승아 2008/01/07 21:10 # 답글
책을 읽고 그저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왜 라이트노벨의 정의가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재미있으면 이러이러해서 재미있다, 별로라면 이런이런 부분에서 별로였다 정도로만 이야기하면 될 걸 구태여 라이트노벨의 기원까지 캐고 들어가려는지...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분들도 그저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지, 형식에 구애받는 건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index 2008/01/07 21:10 # 답글
크로이츠님의 말은 정말 요점막 쏙쏙 찝으시는지라 생각많이 하고 갑니다.2008/01/07 21:1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시오、 2008/01/07 21:14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스타일은 있지만, 내용의 본질은 없는 거로군요.개인적으로는 뭐든지 자신이 즐거우면 그게 우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감상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라이트노벨의 규격에 맞지 않으면 특정 작품을 깎아내리는 식'이 되면 곤란하겠지요.
저는 딱히 비평을 쓰려고 하진 않지만 자신이 재미있게 느낀 부분을 설명하려고는 하니까.. 앞으로도 주의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평문화활성화는 기대됩니다. 요즘도 보고있으면 여러가지 의미로 재밌거든요.
時水 2008/01/07 21:29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팔랑기테스 2008/01/07 21:30 # 답글
휘유...그저 감탄만 나오는군요.네오바람 2008/01/07 21:33 # 답글
우리나라는 역사가 짧아서 뭐든지 급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딴나라에선 몇백년동안 구축된 장르문화가 우리나라에선 불과 십여년도 안되서 수입되어 버렸죠. 좀 문제인것 같습니다.피오레 2008/01/07 21:41 # 답글
예전에 판타지나 SF 소설 장르에 대해 분류를 하거나 규정을 내리려는 일도 있었는데, 그때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시절보다 네트워크가 발달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욱 가열되는 것 같네요;; ... 아마 그 때도 '그런거 해서 뭐해! 작품 평만 하면 되지!' 라는 걸로 상황이 종료되었는데;;Laika_09 2008/01/07 22:03 # 답글
굳이 거창하게 쓸 필요도 없이 작품에 대한 호오와 그 이유만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면 좋은 감상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ㅛ'취향 차이는 부끄러운 게 아닌데 왜 다들 드러내기를 꺼려할까요.
로오나 2008/01/07 22:03 # 답글
이거다! 라고 하기엔 너무 넓죠 :) 저도 라노베는 장르적 정체성으로 규정하기에는 불가능하고, 출판폼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가 들어간 출판 폼. 현재의 국내상황을 보면 '만화같은 일러스트가 들어간 소설출판 폼'이 되겠군요.루인 2008/01/07 23:27 # 답글
후햐야. 좋은글 읽고 갑니다.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cign 2008/01/07 23:34 # 삭제 답글
라이트노벨에 관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에 지친판인데..마침 좋은 글 잘 보고 갔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이군요.
半道 2008/01/07 23:55 # 답글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역시 크로이츠님.Taker 2008/01/08 00:45 # 답글
안녕하세요 밸리 타고 왔습니다. 좋은글 보고 갑니다.자주 올라오는 감상글중에 라노베가 어떤데 이작품은 어떻고 할때마다
언제부터 라이트 노벨이 '어떤게' 되었나 싶어서 뭔가 뒤를 안닦은 느낌
이었던지라 이리도 명쾌한 글을 보니 뭔가 눈이 트이는 기분이네요.
엘샤드 2008/01/08 00:45 # 답글
음음--. 역시 규정 짓는 일 자체가 바보짓일지도 모르겠군요.에톤 2008/01/08 01:48 # 답글
밸리 타고 와서 읽고 갑니다.비평에 대해 한번 생각해게 하네요
휴이 2008/01/08 02:03 # 답글
라이트노벨을 광범위하게 설정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불리는 타겟이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라노베와 좁은 의미에서의 라노베의 차이가 있습니다.일전에 한 산케이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었죠.
<허인[虚人]들>, <아침의 가스파르>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SF작가 츠츠이 야스타카[筒井康隆] 씨(73)가 젊은 세대에 인기인 '라이트노벨'을 집필한다는 사실이 9일경에 발표되었다. 츠츠이씨 공식 홈페이지의 최신정보에 따르면, <비앙카 오버스터디[ビアンカ・オーバースタディ]>라는 라이트노벨 작품을 2008년 1월 발매 예정인 잡지 '파우스트'(코단샤 刊)에 게재한다. 상세한 내용은 아직 미정.
라이트노벨이란, '삽화를 다수 포함한, 중학생 대상의 내용, 문체로 쓰여진 작품의 총칭'이라 정의되는 소설의 한 장르. 일반소설과는 구별하여 취급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문학상 수상 경험도 많은 베테랑 작가가 라이트노벨을 집필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정의가 분명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푸른꽃/현서 2008/01/08 02:57 # 삭제 답글
대체로 공감하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글 쓰신 분은 올바른 감상과 올바른 비평을 혼동하고 계시네요. 이것만 조금 바로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간단한 구어체 문장으로 속도감있는 묘사를 하는 NT나 SF/판타지,혹은 영미 Paperback소설의 특징에 대해서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수는 없겠지만(말 그대로 취향의 문제이니), 비평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점은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희곡문학이나 헤밍웨이같은 하드보일드류 소설의 대화체에 관한 비평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라이트노벨에서 그런 소위 말하는 '작품성'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크로이츠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쓰신 부분은 논쟁의 소지가 굉장히 다분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이쪽에 대해서 자료를 좀 읽어보고 싶었는데,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좋은 내용 잘 읽고 갑니다.
하쿠시츠키 2008/01/08 05:13 # 답글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제게 있어서 라이트노벨이란 '휴대하기 좋은 크기의 소설책'이란 느낌일까요. 무엇보다 국내에 라이트노벨이라 불리는 책들이 처음 들어왔을 당시 그 콤팩트한 사이즈에 격침당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ASTE 2008/01/08 05:41 # 답글
저는 아주 간단하게 "만화라는 표현수단에서 그림을 빼면 라이트 노벨이다"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결국 라노벨 논쟁은 "만화라는 매체는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를 논하는 만큼 소용없는 짓이란 거죠...
그건 그렇고. 이런 논쟁의 이면에는 해당 장르의 수준이 높으냐 낮으냐를 논하기보다는 수혜자층의 수준을 어찌 좀 매겨보고 싶어하는 양쪽의 고약한 심리가 깔려있는 듯해서 떨떠름하다능...
뱀 2008/01/08 06:17 # 답글
좋은 포스트 잘 읽고 갑니다. 체크포스트 해갈게요.소하 2008/01/08 09:53 # 답글
정말 취향의 차이와 작품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러지는 않았나 조심해야겠군요.L.N 2008/01/08 11:22 # 삭제 답글
호오....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사실....라이트 노벨의 본질을 파악하려 하는건 과격하게 말하면 시간낭비or인생낭비 라고도 할 수 있죠.
저도 한때 고민했지만, 결국 쓸대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 그저 열심히 읽고만 있습니다.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무었도 아닌 '재미' 이니까 말이죠.
그런고로, 카와카미 미노루의 신작이여 빨리 나와라......!!!!
파실 2008/01/08 16:30 # 답글
앞으로 리뷰를 좀 해보려고 했는데 이 글을 보게 되어 다행이군요.산마로 2008/01/09 14:26 # 삭제 답글
라이트 노벨을 장르의 개념으로 정의하려고 하면 실패하겠지만, 글쓴이도 얘기하다시피 '하나의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라이트노벨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영문 위키에서는 라이트노벨의 영어권 대응물로서 '영 어덜트 픽션'을 들고 있는데, 이는 대강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세대를 겨냥하는 대중소설에 해당합니다. 라이트노벨의 시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점 판매를 1차 판로로 하는 10대 취향의 대중소설이라고 봐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라이트노벨이 정착될수록 일러스트나 일본에서 영향받은 요소들은 희석될 것이므로 정의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ㅁㄴㅇㄹ 2008/01/09 23:07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그리고 다른 분들도 좋은 글 잘 보고 가셨으면 앞으로는 좀 행동에 적용시켰으면 좋겠습니다'ㅅ'
크로이츠 2008/01/10 22:37 # 답글
정의와 대체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것과, '라이트노벨은 이러저러한 것이니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 것은 상당히 다른 문제입니다.저도 라이트노벨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본문에 언급한 것처럼 '일러스트가 사용되고 있으며 젊은 층, 특히 오타쿠 문화를 즐기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오락소설'이라고 설명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라이트노벨의 정의나 본질을 확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거나 그에 맞지 않는 작품을 수준미달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건 본문중에서 설명한 이유를 근거로 들어 헛수고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라이트노벨의 정의라는 것은 결국 편의를 위한 것으로, 대략적인 이해와 전달을 위해 정해진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비평'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문예비평와는 다른, 일종의 대중문화 비평적인 측면에서 사용했습니다. 일반 대중소설이나 게임, 만화 등에서 사용되는 것과 가까운 의미로,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감상을 논리적으로 객관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문예비평의 기준으로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문화를 평가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감상과 비평의 구분을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