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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히로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 감상



일본에서 오타쿠문화, 특히 모에와 에로게에 대해서 문예비평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던 최초의 평론서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가 본 일본사회』의 속편. ...구입한지는 한참 지났지만, 이제야 끝까지 읽고 포스팅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게임이 갖는 메타시점적인 특성을 「게임적 리얼리즘」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게임적 리얼리즘」이 라이트노벨과 미소녀게임 등 오타쿠문화에 침투해있다는 내용입니다. 오오츠카 에이지는 캐릭터소설(라이트노벨)이 「애니메이션 및 만화적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다고 논하였습니다만, 라이트노벨에는 그뿐만 아니라 「게임적 리얼리즘」도 있다는 것이죠.
게임의 메타픽션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를 바탕으로 한 작품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만, 이를 「게임적 리얼리즘」이라 정의하고 오타쿠의 텍스트문화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논한 것은 상당히 신선하고 예리한 해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근거들이 부실해서 조금 아쉽더군요. 다양한 작품을 총괄하여 결론을 도출하였다기보다는, 자기 이론에 해당되는 작품만을 골라 모아서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노벨로서는 사쿠라자카 히로시가 쓴 루프물인 『All You Need Is Kill』을 픽업하여 해설하고 있습니다만, 『All You Need Is Kill』은 라이트노벨에서 크게 일탈해 있는 소설입니다. 라이트노벨작가가 써서 라이트노벨로서 출판되었을 뿐이지, 실제적으로는 SF소설에 가까운 작품이죠. 라이트노벨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면 라이트노벨의 주된 흐름은 물론 곁가지와도 별다른 관계가 없는 소설입니다.
『All You Need Is Kill』은 분명 「게임적 리얼리즘」을 주장하기에는 최적의 사례이긴 합니다만, 이런 마이너한 작품을 예시로 들면서 ‘이것이 라이트노벨의 「게임적 리얼리즘」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조금 오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라이트노벨에서 메타시점이나 루프물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본문중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던 『스즈미야 하루히』라든가, 마찬가지로 마이너한 작품이긴 하지만 아라이 테루의 『DEAR』시리즈를 고찰대상으로 삼는 편이 좋았을 겁니다. 적어도 이 작품들은 라이트노벨의 주된 흐름 속에 있는 작품들이고 말이죠.
(사실 아즈마 히로키라든가 『파우스트』등 일부 출판업계에서 라이트노벨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보면, 항상 일반적인 의미의 ‘라이트노벨’이 아니라 조금 다른 장르의 책들을 라이트노벨이라고 부르면서 같은 것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일반적으로 라이트노벨 독자들이 읽는 ‘라이트노벨’이라는 건 마이죠 오타로나 세이료인 류스이, 교고쿠 나츠히코 등의 소설과는 다른 형태로 소비되고 있는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들이 라이트노벨을 대표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더군요. 라이트노벨 시장의 확대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나스 키노코 개인의 지명도 때문에 잘 팔렸을 뿐 라이트노벨 시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공의 경계』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고...)
또한 미소녀게임에서는 『ONE ~빛나는 계절로~』와 『EVER17』, 『쓰르라미 울적에』를 고찰하고 있습니다만, 『ONE ~빛나는 계절로~』만 다른 게임에 비해 너무 오래된 게임이어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시즈쿠』도 언급되고 있긴 합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얘기하자면 『Forest』...가 아니라 『Fate/hollow ataraxia』일텐데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더군요.


그밖에도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기가 아는 범위내에서 자기 이론의 근거가 될 만한 작품만을 골라서 이론을 구축하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즈마 히로키씨는 이 작품들이 직접 연결되어 영향을 주면서 차례차례 나타났다기보다는 비슷한 감성을 지닌 세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관점인 것 같습니다만... 라이트노벨을 중심으로 얘기하면서도 정작 라이트노벨에 대한 내용이 가장 부실한 상태이고, 여러모로 설득력이 부족해진 것 같네요.
(참고로 작품론에서는 라이트노벨은 『All You Need Is Kill』, 미소녀게임은 『ONE ~빛나는 계절로~』, 『EVER17』, 『쓰르라미 울적에』, 문학은 『九十九十九』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컨텐츠지향미디어(준비되어 있는 컨텐츠를 이용자가 수동적으로 수신하는 미디어. 일반적인 출판서적, 방송, 라디오, CD 등)와 커뮤니케이션지향미디어(이용자가 컨텐츠 내부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간섭하는 미디어. 게임, 인터넷 등)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시즈쿠』이후 미소녀게임이 커뮤니케이션지향미디어에서 컨텐츠지향미디어로 변화하였다고 설명한 건 적절한 해석이었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시즈쿠』보다는 『To Heart』의 영향이라고 해야하겠습니다만).
또한 선택지가 없는 소설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쓰르라미 울적에』가 게임적으로 뛰어난 작품인 이유를, 게임이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작중에서 반복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환기시켜 독자=플레이어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명한 부분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즈마 히로키씨는 포스트모던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론에 모든 것을 끼워맞추는 것보다는 작품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논하는 편이 더 좋은 평론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_-)
그밖에 『ONE ~빛나는 계절로~』, 『EVER17』, 그리고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AIR』에 대한 부분도 이미 온라인상에서 논의될 대로 논의된 뻔한 내용이었습니다만, 이렇게 활자화되어 책에 실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이런저런 안 좋은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지금 이쪽 문화에 대해 활자를 통해 논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고, 읽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곧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가 본 일본사회』의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 하네요. 사실 꽤 오래된 책이고 현재 시점에서 보면 부적절한 부분도 있습니다만(지금은 대체할 만한 이론도 꽤 나와있는 상태이고), 그래도 이쪽 문화를 논하는 데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서적이니...

by 크로이츠 | 2007/06/28 18:51 | (과거로그)雜說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치이링 at 2007/06/28 20:44
그 책은 사실 문예비평이 아니라 어떠한 프로파간다를 가진 주장글에 가깝다고 봅니다. 근데, 오타쿠 문화를 해석하려면 이 방식도 그다지 나쁜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들더군요.
Commented by 달마 at 2007/06/28 21:09
九十九十九...면 마이죠 오우타로(맞나? -_-)라는 작가가 쓴 건가요?

...그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가 되는 소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흥미가 있 -_-;;
Commented at 2007/06/28 21: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정수君 at 2007/06/28 23:59
간간히 무리한 듯한 전개(...)도 눈에 띕니다만,
뭐, 그래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죠.
저는 읽으면서 지루하지는 않더군요. (조금씩 짬짬이 읽기는 했지만;)
Commented by 크로이츠 at 2007/06/29 13:33
치이링님/
저는 포스트모던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기 때문에 그쪽 부분은 그냥 술렁술렁(...)

달마님/
캐릭터소설과도 미소녀게임과도 별다른 접점이 없지만, 오타쿠의 게임적 감각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 같더군요. 사실 전 그 책을 읽지 않아서...(...)

비공개님/
수정했습니다. 감사감사.

정수君님/
저도 발매 한달 후에 입수했지만 지금 다 읽었는데요 뭐(...)
사실 동물화하는 포스트포던을 읽은 것도 최근의 일이어서(...한국어판이 나오길 계속 기다렸는데 너무 늦어지더군요), 비교적 최근의 상황을 많이 담고 있었기 때문에 동물화하는 포스트포던보다는 재밌게 읽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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