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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리』감상




너무 갖고 싶었다.
만지고 싶었다.

그것만 있으면 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소중했다.

하지만

갖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은
이제 없다──




가끔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우가 있다.
나라는 존재와 공통항이 있는 경험이나 정서를 다루고 있는 경우 쉽게 내 자신이 감정이입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는 경우에는 완전히 객관시해서 보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심정으로 보게 된다.
내가 시선을 빌리게 되는 그 타인들은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성별이나 나이, 직업, 성격, 취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는 다르지만, 일단 나하고는 어느 정도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의 정신을 갖고 있는지는 느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 중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 나와의 관계하에 있는 그 사람의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이때 누군가의 시선을 빌리기는 하지만, 특정한 한 사람의 시선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으로 본다는 느낌이다. ‘그 사람 같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까’라는 시점으로 나는 작중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을 상상하며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나에게 좀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작품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에 대해서도.
오카자키 마리의 『서플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었다.


『서플리』는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잡지 중에서도 리얼하고 패셔너블한 분위기인 『FEEL YOUNG』에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2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이라는, 간략화하면 이 계열의 여성만화중 대부분이 해당되는 스토리의 만화.
하지만 심리묘사의 비중과 질이 독보적으로 높기 때문에, 각 장면이 다양한 정서를 환기시키면서 깊이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사귀었던 애인과 헤어지고 방황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절묘한 호흡으로 묘사한 작품. 그림은 아름답고 컷 구성도 감각적이어서, 심리묘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을 정도였다.
나 자신은 회사원 생활의 경험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작가의 과거경험을 살린 광고회사 근무의 묘사는 상당히 리얼하게 느껴졌다. 연애 관련의 전개도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했는 듯.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측면과 사랑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측면을 분리하지 않고, 한 명의 인간의 삶과 미래로서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남성독자에 대한 친화도는 낮지만 충분히 메이저가 될 만한 작품인데, 황금시간대에 방송되었던 드라마판이 만화와 큰 격차(내용면에서도, 퀄리티면에서도)가 있었기 때문에 큰 화제가 되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관심을 가진지 반년 이상 지났지만 『FEEL YOUNG』계열의 단행본은 비싼 편이기 때문에 읽는 걸 주저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대원씨아이에서 이슈 코믹스 스페셜로 나와 있어서 다행이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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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이츠 | 2007/01/17 18:11 | (과거로그)漫畵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야나기 at 2007/01/17 19:01
소설인가 싶었더니 만화였군요...
이슈쪽엔 재밌어보이는 작품들이 많아보였던...
Commented by 우림관 at 2007/01/17 19:04
드라마 보고 나면 원작 만화를 읽고 싶은 생각이 싸악 사라져버려서리 말이죠.
Commented by 크로이츠 at 2007/01/17 19:34
야나기님/
이슈 코믹스 스페셜은 '큰 책'을 주로 내는 곳이더군요.

우림관님/
드라마는 월9치고는 시청률도 안 좋았다고 하더군요. 내용도 원작하고 다르면서 원작의 특징(나레이션 등)을 이상하게 재현하려고 해서 완전히 망친 케이스.
만화는 매우 좋은 작품입니다.
Commented by Vicious at 2007/01/17 19:43
안노모요코의 '워킹맨'하고 비교해보니 재밌더군요. 일과 연애의 비중이랄까. 한쪽은 일만하고 한쪽은 연애만하고...;
Commented by 마아사 at 2007/01/17 20:12
3, 4권은 언제 한국어판으로 나올까 기다리는 중이죠. 국내에선 오카자키님의 작품이 '그녀가 죽었다'달랑 하나밖에 소개 안 되었지만...
Commented by 날씨좋다 at 2007/01/17 20:22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는 작품입니다.
보고 영 아니어서 접었던 기억이 나는데 크로이츠님 말씀대로 원작이 명작이라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Commented by 라그나 at 2007/01/17 22:55
드라마는 그리 재밌지 않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원작은 재미있나 보군요.
구매 리스트에 적어 두어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사화린 at 2007/01/17 22:58
표지가 굉장히 소설삘이 강하게 났는데
만화였던거군요 @_@

표지에서부터 뭐랄까...
이 작품이 '특이한 색'을 가지고 있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_@
Commented by 마법시대 at 2007/01/18 21:20
그녀가 죽었다를 보고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하나도 안야해서 실망했습니다. (뭐?)

농담이고... 뭐랄까... 임팩트나 그런건 없는데 계속 긴장된 분위기는 유지된단 말이죠. 캐릭터 사이의 미묘하면서도 잘 해결되지 않는 갈등이라던가...
그런 만화는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면서도 왠지 계속 읽데 됩니다.
Commented by 시오、 at 2007/01/18 23:31
오늘 사서 수원가는 지하철 안에서 다 읽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부분보다는 사람에 대한 감정에 흔들리는 부분에 너무 이입이 되서 괴로웠어요. 컷과 묘사가 정말 좋았습니다...그런데 이번엔 어떤 분의 시선을 빌리셨을까요. 조금 궁금.
Commented by 크로이츠 at 2007/01/19 18:37
Vicious님/
아니아니, 워킹맨이 일 비중이 큰 건 사실이지만 서플리도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비슷한 장르의 다른 만화보다는 일의 비중이 높은 편입...;

마아사님/
1,2권이 나온지 꽤 시간이 되었던데 3권이 안 나오고 있더군요. 으음(...).

날씨좋다님/
드라마하고는 등장인물 이름만 같을뿐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만화를 읽고 드라마 홈페이지에 들어가본 뒤 '나의 XXX랑 XXXX는 이렇지 않아!'하고 분개했었...;

라그나님/
상당~히 재밌는 작품입니다. 물론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는 합니다만...;

사화린님/
FEEL YOUNG 계열 만화들은 표지가 만화책 같지 않고 상당히 감각적인 편이죠. 이런 형태의 표지도 꽤 있습니다^^;

마법시대님/
잠깐, 2권에서의 격렬한(?) 정사신은 하나도 안 야한 겁니까?!
저는 그 인간관계 속의 미묘하고 복잡한 그 갈등 묘사를 무척 좋아합니다. 후.후.후(...)

시오、님/
그 리얼하면서도 감상적인 심리묘사가 마음에 들더군요. 컷구성 덕분에 더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시선이야 뭐 이것저것...
Commented by 라그나 at 2007/01/20 11:32
크로이츠님//자, 잠깐만요, 그럼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설을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시는 크로이츠님은 대체...으, 으읍, 으으읍!!!(라그나, 의문의 복면인들에게 끌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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