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도 중반에 들어섰을 즈음, 야자와 아이의 『NANA』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후 그 뒤를 잇듯이 비교적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녀만화가 연달아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소녀만화와는 다른 형식으로 소비되었던 이들 작품군 중에서는 다양한 히트작이 존재하지만, 그 중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만화는 두 작품밖에 없다. 니노미야 토모코의 『노다메 칸타빌레』, 그리고 우미노 치카의 『허니와 클로버』이다.
미대생과 그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청춘스토리를 다룬 『허니와 클로버』는 연재지의 잦은 변경(『Cutie Comic』, 『YOUNG YOU』, 『코러스』순으로 연재지가 변경되었다)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 일본 소녀만화계의 최고 인기작중 하나였다. 아오이 유우 등을 주연으로 실사영화도 만들어졌으며, 후지테레비의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기획 ‘노이타미나’의 첫번째 작품으로서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어주기도 하였다.
2006년 10월 시점에서 최종권까지의 누적판매량은 800만부(단행본 띠지 참조). 소녀만화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10대 소녀보다는 만화를 덜 읽는 20대 이상의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로서 연재지 또한 항상 성인여성 대상의 잡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숫자는 소녀만화 독자층을 넘어 일반인 독자에게도 읽혀지는 레벨임을 의미한다. 그 중에는 남성독자의 비율도 높다.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한 청년만화 이상으로 이성(異性) 독자의 비율이 낮은 성인여성 대상의 소녀만화에 있어서, 이는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한정된 독자층을 넘어 대중적인 작품으로
『허니와 클로버』가 이렇게 대중화(특히 남성독자에 대해서)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그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다. 잡지 『다빈치』는 2007년 1월호에서 개그만화를 분류하면서 계산된 연출로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수학적 개그,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파워 개그, 일상에 있을 법한 소소한 해프닝으로 공감을 주는 음미 개그라는 3가지 분류를 제시하였는데,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이 3가지 개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갖추어져 있다.
또한 남녀관계의 이해타산(주로 여성측의 속마음을 대변한)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남성독자의 접근이 쉽다는 점도 있다. 이는 남성독자가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녀만화를 읽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부분이나,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그와 같은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즉, 모든 이에게 통하는 공통항인 개그 요소를 갖추면서 성차(性差)로 인한 위화감을 적게 주는 작품이기에, 특정 독자층을 상정하고 연재된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특징들은 마찬가지로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이렇게 대중성을 지닌 만화이면서, 동시에 성인 대상의 소녀만화 중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매우 유니크한 만화이기도 하다.
◆독백을 통한 공감 유도의 메커니즘
많은 사람들이 『허니와 클로버』의 장점으로서,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청춘 이야기라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짝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라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짝사랑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재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째서 『허니와 클로버』만이 특별시되는 것일까. 사랑에 대해 다룬 만화는 흔하디흔한 것이며, 소녀만화의 경우 최대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장래에 대한 불안 등 청춘의 아픔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만화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허니와 클로버』는 계산된 구성하에서 줄거리가 전개되는 작품이 아니며, 강한 인상을 주는 메시지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나 주제 덕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녀만화 속의 안경캐릭터의 이미지를 혁신했다고 평가받는 마야마 타쿠미를 비롯한 캐릭터의 매력이 이를 뒷받침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만화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에 있을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의 가장 큰 기법적인 특징은 그 지나칠 정도로 미화된 독백 장면에 있다.
『허니와 클로버』는 ‘짝사랑을 하는 나’,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하는 나’에 대한 철저한 미의식 속에서 그들의 독백을 작품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스토리의 진행을 멈춘 상태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심정을 한없이 토로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은 항상 슬프고, 안타깝고,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이라면 자기 심정을 담은 시 한두 편은 지어본 경험이 있겠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이런 자작시에 가까운 감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훗날에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한 자기연민과 자기도취가 담겨있는, 이 자작시에 가까운 독백은 에피소드마다 삽입되어 독자가 갖고 있던 감수성을 자극한다.
작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 즉 어두운 밤거리와 비가 내리는 풍경이 연출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는 독자들을 작품세계로 끌어들이고, 독백을 자막같이 삽입하는 컷구성 또한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세계에 몰입한 독자는 감수성에 직접 호소하는 독백을 통해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그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독자들에게서 깊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소녀만화에 있어서 독백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3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전형적인 기법 중 하나지만, 철저히 미화된 『허니와 클로버』의 독백은 근래의 만화들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이었을 정도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청춘 예찬과 그 결말
『허니와 클로버』에는 특별한 줄거리도 메시지성도 없지만, 그 대신 한 가지 일관된 테마가 존재한다. 짝사랑과 장래에 대한 고민 등 수많은 것들을 종합한, ‘청춘’에 대한 예찬이 그것이다.
청춘의 아픔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에게 나쁜 구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의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미워하는 경우는 작중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누구 하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선량한 사람들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경쟁하지도 투쟁하지도 않으며, 3각관계에 놓여진 상황에서도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청춘을 구가하는 청년들로서 미화된 모습들만을 보여준다.
이는 이미 어른인 것으로 보이는 하나모토와 노미야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작중의 주요등장인물들은, 모두 ‘청춘’속에 있는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에서 미화되는 청춘에는, 짝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작가 모리 히로시가 「센티메탈조차 아트의 일부이다」라고 평했듯이,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조차 미화의 대상인 것이다.
작가는 특기로 하는 ‘밤’, ‘비’를 이용한 서정적인 배경과 감성을 환기시키는 사물, 그리고 시적인 독백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미화하여 그려낸다. 그 결과 그들이 겪는 ‘청춘의 아픔’은 무척 매력적인 것이 되며, 동시에 독자에게 큰 반향을 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조차 미화의 대상이 된다. 주인공이 사랑에 실패하거나 능력부족으로 주저앉는다고 해도, 작가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식 같은 주인공의 사랑스런 모습이며 미화시켜줄만한 부분인 것이다.
최종권인 10권에서 ‘주인공’인 타케모토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결말에 일부 독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그렇게 실연한 타케모토 또한 미화의 대상으로서 취급하려고 했으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인공의 연애가 성취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작가와 감성을 공유할 수 있었던 독자는 마지막 결말에 감동을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독자는 원하지 않았던 결말에 대해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하구미가 사회,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존재인 하나모토와 이어지고 그에 비해 열등한 타케모토가 연애에 실패하는 엔딩에 대해서 여성작가가 여자의 계산적인 면모를 드러낸 부분이라고 비평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작가의 성향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나온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조차 작가에게 있어서는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며, 결코 함부로 취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권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대부분 강한 실망감 혹은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일부 독자는 자신의 공감이 작가와의 감성 차이로 인해 깨져버리는 경험을 하였고, 그로 인해 본래 작가가 의도한 감동을 얻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이는 명확한 줄기 없이 작가가 유도하는 공감과 감동의 연쇄로 진행되어온 『허니와 클로버』에 있어서, 최대의 오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만화의 미래
『노다메 칸타빌레』, 『허니와 클로버』등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소녀만화의 연속적인 히트의 이면에는 분명 상업적인 측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고생이 아니라 성인의 꿈과 사랑을 다루는 이 만화들은 일본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소비층인 F1층(20세에서 34세까지의 여성을 의미하는 마케팅용어)을 공략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들 계층 중 본래 만화를 읽지 않던 사람들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 만화계는 이와는 약간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잡지 『다빈치』는 2006년 12월호에서 『노다메 칸타빌레』, 『허니와 클로버』의 뒤를 이을 소녀만화로서 요시나가 후미의 『플라워 오브 라이프』, 시이나 카루호의 『너에게 닿기를』등의 작품을 꼽았다. 이들은 모두 연애뿐만 아니라 ‘우정’이 중요시되고 그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등신대로 그려지는, 소녀만화계에서 흔히 ‘퓨어’라고 표현되는 명랑하고 순진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영화화된 나카하라 아야의 『러브 콤플렉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인지향의 작풍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이처럼 비교적 저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소녀만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대상의 소녀만화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만화계에는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개성적인 잡지가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히우라 사토루의 『호타루의 빛』등 미디어믹스의 가능성이 있는 양질의 만화가 계속 생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토양이 존재하고 있는 한, 성인대상 소녀만화의 대중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소녀만화의 흐름 속에서, 『허니와 클로버』라는 명작을 낳은 우미노 치카는 과연 어떤 신작을 보여줄 것인가. 흔치 않은 작풍과 역량을 지닌 작가로서, 새로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미대생과 그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청춘스토리를 다룬 『허니와 클로버』는 연재지의 잦은 변경(『Cutie Comic』, 『YOUNG YOU』, 『코러스』순으로 연재지가 변경되었다)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 일본 소녀만화계의 최고 인기작중 하나였다. 아오이 유우 등을 주연으로 실사영화도 만들어졌으며, 후지테레비의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기획 ‘노이타미나’의 첫번째 작품으로서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어주기도 하였다.
2006년 10월 시점에서 최종권까지의 누적판매량은 800만부(단행본 띠지 참조). 소녀만화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10대 소녀보다는 만화를 덜 읽는 20대 이상의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로서 연재지 또한 항상 성인여성 대상의 잡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숫자는 소녀만화 독자층을 넘어 일반인 독자에게도 읽혀지는 레벨임을 의미한다. 그 중에는 남성독자의 비율도 높다.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한 청년만화 이상으로 이성(異性) 독자의 비율이 낮은 성인여성 대상의 소녀만화에 있어서, 이는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한정된 독자층을 넘어 대중적인 작품으로
『허니와 클로버』가 이렇게 대중화(특히 남성독자에 대해서)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그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다. 잡지 『다빈치』는 2007년 1월호에서 개그만화를 분류하면서 계산된 연출로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수학적 개그,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파워 개그, 일상에 있을 법한 소소한 해프닝으로 공감을 주는 음미 개그라는 3가지 분류를 제시하였는데,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이 3가지 개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갖추어져 있다.
또한 남녀관계의 이해타산(주로 여성측의 속마음을 대변한)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남성독자의 접근이 쉽다는 점도 있다. 이는 남성독자가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소녀만화를 읽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부분이나,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그와 같은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즉, 모든 이에게 통하는 공통항인 개그 요소를 갖추면서 성차(性差)로 인한 위화감을 적게 주는 작품이기에, 특정 독자층을 상정하고 연재된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특징들은 마찬가지로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는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이렇게 대중성을 지닌 만화이면서, 동시에 성인 대상의 소녀만화 중에서도 비슷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매우 유니크한 만화이기도 하다.
◆독백을 통한 공감 유도의 메커니즘
많은 사람들이 『허니와 클로버』의 장점으로서,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청춘 이야기라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짝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라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짝사랑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재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째서 『허니와 클로버』만이 특별시되는 것일까. 사랑에 대해 다룬 만화는 흔하디흔한 것이며, 소녀만화의 경우 최대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장래에 대한 불안 등 청춘의 아픔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만화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허니와 클로버』는 계산된 구성하에서 줄거리가 전개되는 작품이 아니며, 강한 인상을 주는 메시지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나 주제 덕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녀만화 속의 안경캐릭터의 이미지를 혁신했다고 평가받는 마야마 타쿠미를 비롯한 캐릭터의 매력이 이를 뒷받침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만화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에 있을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의 가장 큰 기법적인 특징은 그 지나칠 정도로 미화된 독백 장면에 있다.
『허니와 클로버』는 ‘짝사랑을 하는 나’,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하는 나’에 대한 철저한 미의식 속에서 그들의 독백을 작품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스토리의 진행을 멈춘 상태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심정을 한없이 토로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은 항상 슬프고, 안타깝고,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이라면 자기 심정을 담은 시 한두 편은 지어본 경험이 있겠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이런 자작시에 가까운 감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훗날에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한 자기연민과 자기도취가 담겨있는, 이 자작시에 가까운 독백은 에피소드마다 삽입되어 독자가 갖고 있던 감수성을 자극한다.
작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 즉 어두운 밤거리와 비가 내리는 풍경이 연출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는 독자들을 작품세계로 끌어들이고, 독백을 자막같이 삽입하는 컷구성 또한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세계에 몰입한 독자는 감수성에 직접 호소하는 독백을 통해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그들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독자들에게서 깊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이다. 소녀만화에 있어서 독백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3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전형적인 기법 중 하나지만, 철저히 미화된 『허니와 클로버』의 독백은 근래의 만화들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이었을 정도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청춘 예찬과 그 결말
『허니와 클로버』에는 특별한 줄거리도 메시지성도 없지만, 그 대신 한 가지 일관된 테마가 존재한다. 짝사랑과 장래에 대한 고민 등 수많은 것들을 종합한, ‘청춘’에 대한 예찬이 그것이다.
청춘의 아픔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에게 나쁜 구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의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미워하는 경우는 작중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누구 하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선량한 사람들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경쟁하지도 투쟁하지도 않으며, 3각관계에 놓여진 상황에서도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청춘을 구가하는 청년들로서 미화된 모습들만을 보여준다.
이는 이미 어른인 것으로 보이는 하나모토와 노미야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작중의 주요등장인물들은, 모두 ‘청춘’속에 있는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에서 미화되는 청춘에는, 짝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작가 모리 히로시가 「센티메탈조차 아트의 일부이다」라고 평했듯이, 『허니와 클로버』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조차 미화의 대상인 것이다.
작가는 특기로 하는 ‘밤’, ‘비’를 이용한 서정적인 배경과 감성을 환기시키는 사물, 그리고 시적인 독백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미화하여 그려낸다. 그 결과 그들이 겪는 ‘청춘의 아픔’은 무척 매력적인 것이 되며, 동시에 독자에게 큰 반향을 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조차 미화의 대상이 된다. 주인공이 사랑에 실패하거나 능력부족으로 주저앉는다고 해도, 작가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식 같은 주인공의 사랑스런 모습이며 미화시켜줄만한 부분인 것이다.
최종권인 10권에서 ‘주인공’인 타케모토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결말에 일부 독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그렇게 실연한 타케모토 또한 미화의 대상으로서 취급하려고 했으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인공의 연애가 성취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작가와 감성을 공유할 수 있었던 독자는 마지막 결말에 감동을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독자는 원하지 않았던 결말에 대해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하구미가 사회,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존재인 하나모토와 이어지고 그에 비해 열등한 타케모토가 연애에 실패하는 엔딩에 대해서 여성작가가 여자의 계산적인 면모를 드러낸 부분이라고 비평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작가의 성향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나온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조차 작가에게 있어서는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며, 결코 함부로 취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권의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대부분 강한 실망감 혹은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허니와 클로버』가 많은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일부 독자는 자신의 공감이 작가와의 감성 차이로 인해 깨져버리는 경험을 하였고, 그로 인해 본래 작가가 의도한 감동을 얻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이는 명확한 줄기 없이 작가가 유도하는 공감과 감동의 연쇄로 진행되어온 『허니와 클로버』에 있어서, 최대의 오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만화의 미래
『노다메 칸타빌레』, 『허니와 클로버』등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소녀만화의 연속적인 히트의 이면에는 분명 상업적인 측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고생이 아니라 성인의 꿈과 사랑을 다루는 이 만화들은 일본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소비층인 F1층(20세에서 34세까지의 여성을 의미하는 마케팅용어)을 공략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들 계층 중 본래 만화를 읽지 않던 사람들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 만화계는 이와는 약간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잡지 『다빈치』는 2006년 12월호에서 『노다메 칸타빌레』, 『허니와 클로버』의 뒤를 이을 소녀만화로서 요시나가 후미의 『플라워 오브 라이프』, 시이나 카루호의 『너에게 닿기를』등의 작품을 꼽았다. 이들은 모두 연애뿐만 아니라 ‘우정’이 중요시되고 그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등신대로 그려지는, 소녀만화계에서 흔히 ‘퓨어’라고 표현되는 명랑하고 순진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영화화된 나카하라 아야의 『러브 콤플렉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인지향의 작풍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르지만 최근에는 이처럼 비교적 저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소녀만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대상의 소녀만화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만화계에는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개성적인 잡지가 다수 존재하고 있으며, 히우라 사토루의 『호타루의 빛』등 미디어믹스의 가능성이 있는 양질의 만화가 계속 생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토양이 존재하고 있는 한, 성인대상 소녀만화의 대중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소녀만화의 흐름 속에서, 『허니와 클로버』라는 명작을 낳은 우미노 치카는 과연 어떤 신작을 보여줄 것인가. 흔치 않은 작풍과 역량을 지닌 작가로서, 새로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덧글
우울한달 2006/12/30 10:55 # 답글
청춘이니까 미화하는 게 아닐까요? 청춘이란 말이 그 당사자들보다는 더 어른들이 쓰는 말이니 우미노의 입장에서는 청춘=미화의 대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추억은 아름답게 변화되는 법이고, 그 때의 고통 또한 아름다웠던 청춘이니 말입니다. 크로이츠님 말처럼 우미노는 사랑에 대한 대리만족보다는 공감을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네요.날씨좋다 2006/12/30 11:01 # 답글
저도 마지막 결말부분보고 완전히 정이 뚝 떨어진 케이스입니다;(제가 타케모토인 것 처럼 감정이입하고 보고있다가 완전히 상처받아 버렸어요 ;ㅂ;)그리고 확실히 크로이츠님 말씀대로 이만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청춘슈트를 어쩌지 못해 환장을 하나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는...
...몇번이나 보고 소장중이기도 한 만화입니다만... 확실히 재미있었어요...(결론이 그거냐!)
사화린 2006/12/30 11:47 # 답글
아직 허니와 클로버를 제대로 접해보진 못했지만,주변 평이 너무나 좋았기에,
밸리에서 '비평'이라고 적혀있어서 '오옷-' 하고 놀라서 들어왔었던... @_@;;
저라면 그런 엔딩이라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네요..
저 또한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도 많이 하고
'이렇게 됬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작가분이 나름대로 훌륭하게 매듭지어주시면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데에 익숙하거든요.
사화린 2006/12/30 11:53 # 답글
사실, 청춘의 모습이나 '생활상'을 표현하는 작품에 있어서다른 장르와 같은 '큰 줄기'를 갖추는건 힘들다고 봅니다.
(정말로 '일상'에 가까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말이죠.)
제가 그것을 느끼는 작품은 '마리미떼'인데(역시 라노베로 얘기를..OTL)
이렇게 정말 독자들이 자기 일상과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소설이나 작품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큰줄기-'가 없는게 맞는것같습니다.
그 작품들이 그려 내고 있는건,
마치 주제의식 없이, 소설로 쓰면 난잡할것만 같은..
하지만 자신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기 인생'(즉 각 인물들의 일상)이니까 말이죠 ~_~;;
---------------------------------------------------------------------
- p.s :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점은, 왜 '그런 결말'이 났을때
꺠진 사랑에 대한 슬픔이라던가.. 그런 것들(작가분이 유도했던)을
느꼈던 움직임은 없고, 마치 무슨 주말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드라마 작가를 협박하는(!)듯한 움직임만 있었던걸까요? -_-;
(많은 경우, 저렇게 팬들이 작가를 '협박'해서 잘되먹는 꼴은
'단 한번도' 못봤다는..)
진진 2006/12/30 13:05 # 답글
크로이츠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허니와 클로버가 미화된 독백 장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인기를 끈것도 있지만 저는 뭐니뭐니 해도 캐릭터들의 개성에 한표를 던져주고 싶네요.특히나 마야마 타쿠미란 캐릭터는 저에게 '아 이런 캐릭터도 있었구나'라는 어느정도 혁신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었습니다.(멋지다- 라고 하기엔 하나모토 교수님도 멋지긴 하지만요)
결말은 이전권들을 봐서 어느정도 짐작이 갔었지만 실제로도 저렇게 끝나고 마는군요. 몇개월 내에 10권이 나오면 읽어보고 그에 대한 감상이나 써볼까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요르다 2006/12/30 14:49 # 답글
저 자신이 결말에 깊이 공감한 사람이라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오점'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에 좀 거부감이 느껴지는군요. 작가 또한 그런 결말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혹은 분노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기 작품을 열심히 봐준 소중한 독자일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모두가 같은 느낌을 받는 작품이라는 것이 더 무섭거나 혹은 시시한 물건이 되겠죠.2006/12/30 15:1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온푸님 2006/12/31 02:19 # 답글
결말부분에 대한 반발은 그동안 이어졌던 스토리인 다케모토-하구-모리타의 삼각관계가 (엉뚱한) 하나모토 교수에 의해 깨진거에 대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특히 직전까지도 교수엔딩에 대한 어떤 힌트도 없었고, 그래서 이런 결말에 대한 당위성이 문제가 되는거죠. 그래도, 허니와 클로버는 최고에요!(다케모토)별도로, 지금 소녀만화는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소녀계의 애니화등 미디어믹스가 활성화되고, 각 잡지의 주력(러브콘,모래시계,후르바,첫사랑등)이 대거 끝난 지금이 바로 새경향이 불기 좋은 때죠. 그렇게 따지면, 푸쉬한번 잘못주다 잡지전체가 몰락한 리본은 정말;;;
크로이츠 2006/12/31 15:36 # 답글
우울한달님/역시 대리만족보다는 공감 쪽에 가까운 만화였죠. 성취보다는 그 이전에 있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그걸 무척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약간의 나르시즘이 섞인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날씨좋다님/
그부분은 강한 감동을 받았어야하는 장면이었는데 말이죠...ㅠ_ㅠ 사실 그부분은 타케모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의 아픔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출발점인데, 전해지지 않은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 현실문제인 부분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사화린님/
사실 완전한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배드엔딩으로 끝나도 독자들이 그냥 슬퍼하거나 비명을 지르기만 하고 그 결말을 받아들이는 작품도 많은데, 허니와 클로버는 약간 불만이 많았던 케이스더군요. 일본에서 연재되던 당시 일본웹상에서는 불만만 가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_- 솔직히 저는 그렇게까지 반감을 나타내는 게 잘 와닿지 않아서 좀 황당한 기분이었죠;(하지만 단행본 발매후로는 좋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와서, 지금은 반반 정도인 것 같더군요).
사실 장기연재되는 시리즈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한계입니다만(특히 만화는 연재종료의 시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계산하면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게 어렵죠), 허니와 클로버의 경우 연재지 이동도 있어서 좀 불안정한 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재지를 코러스로 옮기면서 종반부를 빨리 끝내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이니만큼 좀 차분하게 진행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진진님/
마야마는 정말 유니크한 캐릭터였죠. 안경남이면서 그렇게 잘났고, 그렇게 잘났으면서 그모양그꼴이고...ㅠ_ㅠ 남자라는 존재의 본성을 잘 담아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국내에 10권이 나와있을줄 알았는데 아직 안 나왔었군요; 이제 나왔으리라 생각하고 올렸습니다만..;
요르다님/
저도 그 결말은 상당히 좋아합니다. 단지 작품과 독자 사이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전까지의 장점을 많이 잃는 형태의 종반부였으니까요.
지금까지 허니와 클로버에 대한 감상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독자들과의 공감이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개개인의 취향차로 인한 불만이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상당수의 독자들이 공통된 목소리를 내면서 그 공감이 깨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그 이전까지의 작품과 독자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게 된 거죠. 단점은 아닙니다만, 오점이긴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미노 치카씨가 여기저기서 출연할 때의 모습을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가 있어도 나는 이런 결말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강한 의지하에 그 결말을 강행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
비공개님/
안녕하세요. 트랙백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온푸님님/
그 언저리를 좀더 시간을 들여서 보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갑작스럽게 진행되어서 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모토와 하구미가 이어졌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입장이어서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하나모토-하구미의 결말이지만, 두사람 사이에서 연애감정의 소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모토 입장에서보면 연애의 성취가 아니라 그저 시작일 뿐이니까요. 타케모토도 차이기는 예전에 차였었고, 모리타도 자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삼각(사각)관계 끝에 하나모토에게 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구미의 경우 어떤 남자가 더 좋냐보다는 자기가 미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걸어야하느냐의 문제가 더 컸었는데, 그게 남자들의 연애감정과 엮이면서 마치 하구미가 가장 조건이 좋은 하나모토를 선택했다-라고 받아들이면서 화내는 분들이 더 많아서 좀 아쉽더군요(특히 남성독자의 경우 타케모토에 감정이입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일단 연재를 끝낸 인기작가들이 어떤 신작을 내놓을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인기작이 부상할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리본은 실력 있는 작가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속빈 강정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같더군요-_-
YaWaRa군 2007/01/03 18:20 # 답글
안녕하세요 검색하다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블로그 링크 신고합니다..^^ 허니와 클로버는 저도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많은 도움을 얻고 갑니다.크로이츠 2007/01/04 22:02 # 답글
YaWaRa군님/앗, 안녕하세요. 예전 하이텔 때부터 자주 ID를 뵜던 것 같은데 이렇게 찾아오셔서 링크까지 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저도 링크하겠습니다. 영화도 꼭 보러 가야...(...)
고양이하품 2007/01/05 02:28 # 삭제 답글
굿 잡~kimsuv7 2007/01/22 22:31 # 삭제 답글
요새 일하기 바빠서 한동안 만화에 신경을 못쓰다가 우연히 자료 수집 때문에 허니와 클로버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습니다.(이쪽 관련 일을 합니다)아직 만화책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만화의 엔딩과 애니메이션의 엔딩이 비슷하게 표현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나 좀 찾아보다가 블로그에 쓰신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날카로운 의견 재미있게 봤습니다. 사실 제가 우왕좌왕 하던 내용을 어느정도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허니와 클로버의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인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작가의 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그런것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일단 제 경우에는 주관적인 판단 때문입니다. 가슴이 아리다 못해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은 감동을 받기 보다는 잔인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네요. 계속 꿈을 꾸게 해놓고서 맨 마지막에 '이게 현실이야' 라고 툭 던져 놓고 비웃는 작가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달까요? (물론 작가는 비웃지 않았겠지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마음에 안드는가? 하는 고민의 답은 '잔인한 현실속으로의 회귀'로서 끝을 맺기에는 그 이전까지 깔아 놓은 이야기들이 전하는 정서가 매칭이 어스름하게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니와 클로버... 잔인한 만화입니다.
크로이츠 2007/01/31 20:38 # 답글
고양이하품님/감사합니다~
kimsuv7님/
안녕하세요.
kimsuv7님이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이 만화를 바라보는 건 마치 미소녀연애게임마냥 히로인의 공략성공/실패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시선이 아닐까 합니다. 타케모토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허니와 클로버는 다양한 캐릭터가 주역이 되는 군상극이고, 독자가 감정이입하는 주인공 시점에서 히로인과의 연애를 엮어나가는 연애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연애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주장한 엔딩이었을텐데, 그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많이 아쉽더군요.
마모 2007/05/22 00:22 # 답글
허니와 클로버 완결편에 깊이 공감한 사람입니다.저는 지금 청춘이 아니어서 그런지도 몰라요(웃음)
...하구미는 돈을 선택한 게 아니고, '자신의 운명(그림)'을 선택한겁니다.
공기를 선택한 것이고, 인생을 선택한 거죠.
(..돈이라면 모리타쪽이 넘치게 많지 않습니까-_-;;박스로 던져줄만큼)
9권에서, 저는 사실 약간 예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구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은 세상의 아름다운 깜짝상자를 열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없어 안달할때, '도와줄 사람'으로 떠올릴 사람은
교수였죠.
그러나 그 당시는, 팔이 멀쩡했을 때(..) - 말하자면 '내가 달라고 하면
서슴치않고 인생전부를 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말하지 못하다가, 자신에게 그림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깨닫고 나서
비로소 '선택'을 합니다.
그런 타당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교수님.
그 사람은,
'청춘'을 주제로 한 그 만화에서 가장 슬픈 이방인이었지요.
리카와 친구랑 함께 살때도 한사람과 둘, 이 살았다고
뒤늦게 깨달았을만큼. 그래도 자신의 반쪽을 죽은 친구에게
주고 살았을만큼 착하고,
재능과 젊음과 요령, 이 기본장착품인 허니와 클로버 인물 중에
유일하게 재능도 없고, 젊음도 요령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타케모토는 젊음이 있었죠 :))
....그 사람이 '외로움'에 대해 야마다에게 설명할 때,
저는 만일 그 사람이 불행해진다면, 이 만화는 정말
잔인한 만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리타에게도, 타케모토에게도 '하구미'외에 선택지가 있어요.
마치 야마다에게, 노미야가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교수에겐,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하기야, 뭐 바램은 자유니까.
아무튼 그 앤딩에 '분노'하는 건 정말이지 주말 드라마
결말 내 뜻대로 안된다고 난리 부리는 아줌마들의 정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군요.
(물론, 두 케이스 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저도 그럴 때가 있지만.)
^^전 사실 누구편도 아니지만, 그 앤딩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한번 올려봤습니다. 실례가 많았어요. 글 잘읽었구요.
(꾸벅)
크로이츠 2007/05/24 19:43 # 답글
마모님/그렇죠...-_-
조건만이라면 모리타가 훨씬 나은데, 엉뚱하게 하나모토 교수의 돈을 보고 선택했다고 하구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납득이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단순히 연애관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나 미래와도 관련이 있는 부분인데, 단락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더군요.
하나모토 교수에 관해서라면, 하라다가 죽은 다음 리카 곁에 있다가 결국 옥상에서 떠밀려고 할 정도로 지쳐버렸던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정체되어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라도 겨우 길을 찾아서 다행인 것 같네요. 물론 이 사람이 마지막에서 그렇게 나온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는 사람이 많겠습니다만...
하여간 저도 허니와 클로버의 엔딩이 무척 아름다웠다는 점은 동감입니다^^ 좋은 만화였어요.
kimsuv7 2007/05/30 11:35 # 삭제 답글
리플을 달아 놓고 한참 와보지 못해서 멘트해주신것을 몰랐네요. ^^연예게임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니와 클로버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저와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공략성공/실패로 제가 본거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하신 셈이라서... 조금 서운하네요.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이 등장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계속 끌어가다가 맨 마지막에는 결국 현실적은 선택을 해버리고 만 작품의 엔딩을 놓고 제가 생각했던 것은, 작가가 독자들을 꿈꾸게 해놓고 마지막에 현실이라는 칼을 들이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잔인한 만화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공략 성공 실패 문제는 아닌데요...
하여간 오해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랫만에 들렸다가 몇자 적어 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