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전 3 파트 2의 재평가 -에필로그의 독백을 중심으로 by 크로이츠

1. 서론
2. 원효 사상
-공통된 가치로 이어지는 개별적인 가치
3.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
-자각하지 못한 채 전달되는 의지
4. AIR
-'다른 삶'의 긍정과 의지의 연계
5.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
-다수의 의지가 세계를 바꾸는 예
6. 브레인 파워드
-全긍정의 이야기
7.『창세기전 3 파트 2』의 재평가






1. 서론



2000년 12월, 소프트맥스에서『창세기전 3 파트 2』가 발매되었다. 한국게임역사에 한획을 그었다고도 할 수 있는 창세기전 시리즈의 최종작으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평가 자체는 기존 시리즈와 비교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창세기전 3』를 계승한 시스템은 상당히 불편해졌으며, 스토리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에피소드 5의 완성도 등의 문제는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의 『창세기전 3 파트 2』 스토리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잘못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세기전 3 파트 2』의 스토리에 대한 상당수의 '그럴 듯해 보이는' 비판이,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 즉 베라모드의 독백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의 독백을 제대로 기억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창세기전 3 파트 2』를 '기분 나쁜 게임'이라 단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이를 간과한 채로 『창세기전 3 파트 2』을 평가하고 있다고 해서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 플레이어가 독백의 내용을 인상깊게 간직하기 어려운 형태로 에필로그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라모드의 성우를 맡은 윤소라씨의 목소리는『창세기전 3』 때부터 작게 녹음되어 있는데다가, 에필로그에서는 음악에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인상적인 시각적효과와 음악이 흐르는 에필로그에서 대사창이 뜨는 것도 아닌 이상, 그 분위기와 연출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기란 어렵다. 거기다가 최종전투에서 엔딩까지의 전개의 분량상, 한두번이라면 모를까 여러번 반복해서 에필로그의 독백을 들으며 머릿속에 제대로 저장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즉, 『창세기전 3 파트 2』의 스토리가 욕을 먹은 건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에필로그의 독백을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보며 대사 하나하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은 이 게임이 얼마나 형편없고 기존 시리즈를 얼마나 망쳐놓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며 '제작사가 팬을 업신여기고 기만했다'라고 게임과 제작사를 조소하고 비하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 『창세기전 3 파트 2』의 주제와 스토리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 창세기전 시리즈의 대단원이며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에필로그의 독백을, 한국의 고승 원효의 사상과 일본의 소설인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 게임 『AIR』『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 애니메이션 『브레인 파워드』등과 비교하며 고찰하기로 하겠다.






2. 원효 사상
-공통된 가치로 이어지는 개별적인 가치


원효(元曉) 대사는 신라 시대의 고승으로, 한국 역사상 최고의 사상가로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661년, 훗날 화엄종의 개조가 되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난 그는, 해골에 고인 물을 잠결에 맛있게 마신 일을 계기로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음을 깨닫고 그냥 돌아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원효의 사상은 훗날 불교는 물론, 유교를 비롯한 한국 철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여기서 주목했으면 하는 것은 화쟁사상(和諍思想), 혹은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이다. 일단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를 인용해보도록 한다.

'신라시대의 원효(元曉)는, 하나인 마음으로 돌아가서(還歸一心)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서로 대립하고 있는 불교의 종파 의식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원효는 각 종파들의 다른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좀더 높은 차원에서 서로 통합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화쟁사상(和諍思想) 또는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이다.'

유교에서 탐구 대상이자 모범 답안으로 삼는 것이 공자와 맹자의 말이듯이,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석가모니의 말이다. 하지만 성인들의 말씀이라는게 원래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고,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이냐에 따라 그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다. 또한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하고 서로 자기 해석이 맞다고 하며 종파간의 대립이 일어났다.

하지만 원효는 이런 대립을 모조리 포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얼음도 물도 수증기도, 모두 그 근본은 같다. 환경과 관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이 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효는 종파간의 서로 다른 해석도 결국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한 것이므로 모두 다 옳다고 보았다. 해석할 경우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그걸 잘 따져보면 전부 하나의 진리로 도달한다는 것이다.

원효에게 있어서, 생각의 차이로 인한 대립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이다. 원효는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는 사상은 모두 좀더 높은 가치로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 틀린 것이 없다고 보았다. 바꿔말하자면, 모든 것은 궁극적인 가치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평화로운 화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3.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
-자각하지 못한 채 전달되는 의지


부기팝 시리즈는 카도노 코우헤이의 대표적인 소설로, 수수께끼의 괴인 부기팝과 그와 관련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부기팝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소설내의 작가 키리마 세이이치를 비롯해 부기팝, 이미지네이터 등의 캐릭터를 통해 상당히 관념적인 문장이 마치 작품의 테마처럼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그 내용은 주로 세상의 구조나 법칙에 관하는 것으로, 소위 '자기계발'류의 책과 통하는 면도 조금 있다.

『부기팝 위키드 ~엠브리오 염생』은 그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부기팝 카운트다운 ~엠브리오 침식』과 함께 전체 시리즈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으로, 격투만화를 방불케하는 전개가 특징이다.
막강한 '힘'에 눈뜬 청년 타카시로 토오루는, 세계를 감시하는 거대조직 '통화기구'에서 최강이라 불리우는 에이전트 포르테시모와의 대결을 위해 거대한 구체형건물 '스피어'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검은 모자를 쓴 소녀, 즉 부기팝을 만나 이곳을 지옥으로 만드는 싸움을 해야하는 '필연성'이 무엇인지 질문 받는다.
또한, 부기팝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알고 있나?」
「무엇을?」
「어떤 종류의 힘이라든가, 특별한 재능이라든가, 그런 것은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니야. 이전에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실패한 자들이 꽤 있다는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있었지. 그녀는 무척 풍부한 재능이 있었어. 사람의 마음의 약점을 꿰뚫어볼 수 있었어.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공포를 먹는 자'가 되어버렸다」

「많은 자들이, 비슷한 것을 갖고있으면서 각각 실패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노력은 다음 사람에게 이어져 간다. 만약 그가 이전의 사람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그것이 존재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멀리서라도 분명한 영향을 주고 있을 거다」

「...나에게도 이전이 있다, 라는 건가?」
「자네는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자네만의 것이 아니야. 자네-자네들은 자신도 모르게 많은 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돌파"로의 의지를 등에 지고 있는 거다.」

「내가 실패해도, 누군가가 이것을 이어받는다는 건가?」
「그럴지도」
「그렇다면-더욱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게 되어버렸군. 이런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것은 미안하니까 말이지」



즉, 누군가가 과제, 임무, 시련, 숙명에 실패하더라도, 그의 의지와 노력은 분명히 다른 이에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먼저 실패한 사람과 나중에 도전한 사람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을 지라도 이는 성립된다고 부기팝은 말하고 있다. 부기팝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개체의 노력이란 독립된 개체로서의 노력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 전체의 의지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으며, 서로 접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람 한사람의 의지는 무형의 흐름이 되어 다음 도전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최후의 한사람에게 전해져, 부기팝 시리즈에서의 최종목표라 할 수 있는 '돌파'를 가능하게 한다.






4. AIR
-'다른 삶'의 긍정과 의지의 연계


이번에는 일본의 미소녀게임 메이커 Key의 AVG 『AIR』(2000년 9월 18금판 발매, 2001년 7월 전연령대상판 발매)를 보도록 하자.
AIR는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떠돌이 인형사 쿠니사키 유키토의 시점으로 미스즈, 카나, 미나기 3명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DREAM편,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한 SUMMER 편, 그리고 까마귀 '소라'의 시점으로 DREAM의 미스즈 시나리오의 연장선을 지켜보는 AIR편의 순서로 구성되며, 플레이어는 한 단계를 클리어했을 때 다음 단계로 유동된다.
약 1000년전, 일종의 정신 생명체인 '익인'의 마지막 존재인 칸나가 사망하고, 그 혼은 자아를 잃은 채 하늘을 떠돌게 된다. 그 호위무사였던 류야와 시녀 우라하는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류야는 익인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고 우라하는 칸나를 구하기 위한 법술을 익힌다. 과거의 부상으로 류야는 결국 죽게 되나, 우라하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남기고 칸나를 구하려는 의지를 우라하, 그리고 아이에게 맡긴다.
하지만 칸나를 구하는 것은 우라하도 그 아이도 달성하지 못했다. 수많은 요인들로 인해 그들의 대에서는 칸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그 다음 세대도 그 다음 세대도 칸나를 구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이 과정은 작품 내에서 직접 묘사되어 있지 않으나 이를 간접체험해주게 하는 장치가 있다. 바로 DREAM 편이다. 플레이어는 유키토의 시점에서, 미스즈, 카노, 미나기 시나리오라는 형태로 '선대들이 하늘에 있는 소녀를 구하지 못한 기억'을 유사체험한다. 마치 꿈을 꾸듯, 플레이어는 천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각 히로인의 시나리오가 하늘에 있는 소녀를 구하지 못하는 배드엔딩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으로서 결말지어진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물론 각 시나리오마다 배드엔딩은 있으며, 미나기 Another처럼 슬픈 결말 또한 있다) 각각 '하늘에 있는 소녀를 구한다'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각각의 시나리오에 있어서 유키토는 나름대로 목적을 달성하고 만족하고 있다.
여기서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에서 부기팝은 실패했던 자들의 의지가 다른 이에게도 이어지기 때문에(비록 자각하지 못할 지라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하였으나, AIR에서는 한걸음 나아간 해석이 가능하다. 커다란 의지의 흐름(하늘에 있는 소녀를 구한다는 사명) 속에서 볼 때, 이를 달성하지 못한 자들(인형사들)은 실패자일지도 모르나, 개개인의 인생(DREAM)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들은 자신이 해온 것에 만족할 수 있으며, 만족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부기팝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의지'는 실제 작품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유키토가 사용하던 인형에는 인형사(혹은 법술사)들의 '힘'과 의지가 축적되어 있어, 미스즈를 일시적으로 구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외형적인 것으로, 의지의 흐름은 다른 형태로 대단원을 장식하고 있다.
유키토의 어머니에게 유키토에게, 유키토에게서 미스즈에게 이어진 미래를 위한 자기 승화가 그것이다.
사명을 달성하지 못한 유키토의 어머니는 유키토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소멸한다. 지금까지의 인형사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유키토는 그를 자각하지 못한 채 미스즈를 만나,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소멸한다.
미스즈는 유키토가 찾고 있던 '하늘에 있는 소녀'의 꿈에 침식당해,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져 죽을 운명이었다(일단 언급해 두지만, 칸나와 '하늘에 있는 소녀', 류야, 우라하와 유키토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작품내에서 명시된 적은 없다). 유키토의 희생으로 건강을 되찾은 미스즈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절망하지만, 유키토의 마음과 의지는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의지를 얻는다. 미스즈는 잠시 자신 곁을 떠나있었던 양어머니 하루코와 재회,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유키토의 희생도 인형의 힘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스즈의 소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스즈는 마지막까지 하루코와 함께 하는 것 대신, 자신의 대에서 비극이 끝날 수 있도록 행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선택한다. '골...!'로 상징되는 미스즈의 결단에 의해, 루프는 끊기고 천번의 여름동안 계속되었던 비극이 끝나 새로운 '시작'이 생겨난다. 미스즈의 희생으로 등장인물들은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
유키토에게서 마지막 주자인 미스즈로 배턴이 건네지는 릴레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유키토와 미스즈 두 사람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이인삼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지금까지 돌파를 위해 노력해왔던 사람들의 의지를 등에 업고 마지막 골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5.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
-다수의 의지가 세계를 바꾸는 예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이하 GPM)는 알파시스템에서 제작한 PS용 게임으로, 시뮬레이션 성격이 강한 AVG이다. 플레이어는 수수께끼의 괴물 환수에 맞서 싸우는 소년병 중 하나가 되며,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보는 것에서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을 정도의 전공을 세우는 것까지 다양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자유도를 극한으로 살린 TRPG에 가까운 시스템과 이십여명의 캐릭터를 절묘하게 움직이는 AI, 캐릭터와 시츄에이션 등 게임 자체의 매력도 상당한 것이나, 이 게임은 방대한 양의 설정 자료와 그를 바탕으로 한 웹상의 참여형추리게임이라는 숨겨진 면 또한 갖고 있다.

GPM은 일종의 메타픽션으로, 게임의 두 번째 플레이에서부터는 NPC 중 일부가 플레이어 캐릭터를 플레이어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접근해온다. 세계 밖의 존재인 플레이어는 그들의 얘기를 바탕으로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고, 플레이어의 의지와 능력이 충분하다면 세계를 구하는 존재가 되어 진정한 해피엔딩을 유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게임 안에서의 표면적인 진실에 불과하다는 것이, GPM의 숨겨진 설정에서의 대답이다.
GPM의 설정은 공개되어 있는 자료만으로도 책을 한 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하고, 거짓말과 트릭이 난무하는 것이다(이 홈페이지의 고기동환상 건퍼레이드 마치 관련 문서 중 'GPM 플레이의 진실과 의의' 등을 참조).

이 설정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알파시스템의 통칭 '세계의 수수께끼 BBS'에서 유저들이 질문과 추측을 반복, TRPG의 게임마스터 역할을 하는 제작자가 대답과 힌트를 내놓으며 유저들을 진실로 이끄는 'GPM23'이라는 게임이 실시되었다. 유저들은 설정상 '칠천인위원회' 등으로 불리는 존재가 되어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그들의 열의와 노력의 결과, 제작자측은 'OVERS상의 건퍼레이드'라는 소설 형태의 문장으로 작품 세계를 구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 게임과 GPM23, 그리고 설정에서의 세계의 관계에 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고, 제작자측에서도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은 채 '각자의 해석에 맡기겠습니다'라는 태도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예전에 개인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플레이어는 GPM을 통해 제5세계에 개입한다고는 하나, GPM의 플레이어는 수만명에 달하며, 수만개의 제5세계의 평행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GPM은 제5세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GPM은 결국 제5세계의 에뮬레이터, 즉 게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GPM의 플레이는 제5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몇만인의 OVERS 이용자들 중 에뮬레이트된 제5세계를 해피엔딩으로 이끈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이끈 수천, 수만개의 제5세계의 정보는 월드타임게이트('검은달'의 상카우 월드타임게이트, 쿠르스의 아폴로니아 월드타임게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 사이의 정보 균형을 맞추는 통로)를 통해 대량으로 제5세계에 흘러들어가 실제로 역사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GPM을 구입하고 제5세계를 사랑한 플레이어들의 마음이 제작자에게 전해져,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제5세계가 해피엔딩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 결과가 바로 알파시스템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는 'OVERS씨의 건퍼레이드'이다.
당신이 GPM과 제5세계, 그리고 그속의 사람들을 사랑했던 마음은 분명 월드타임게이트를 통해 제5세계에 닿았을 것이다. GPM을 플레이한, 당신의 그 마음은 23인째의 클래스메이트로서, 제5세계를 행복으로 인도한 것이다.'





6. 브레인 파워드
-全긍정의 이야기


『브레인 파워드』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수년간의 침묵을 깨고 1998년에 내놓은 TV애니메이션이다.
토미노씨는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 '등장인물이 많이 죽는 작품'을 내놓는 감독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브레인파워드』는 다르다.

일단 주요 등장인물이 한 명도 죽지 않는다(넬리 브레인으로 승화하는 것을 택했던 넬리 킴은 제외하도록 하자). 쓰러뜨려야 할 적도 없고, 단죄해야할 악역도 없다. 등장인물의 마지막 무기는, 숙적의 탑승기를 파괴시키는 강력한 일격이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고 끌어안는 따뜻한 말이다. 모두 살아남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를 끌어안을 뿐이다. 『브레인 파워드』에는 '당신은 잘못되어 있었다'라며 부정되는 인물이 없다.

주인공인 유우들과 적대하는 세력인 리클레이머의 에이스로서 유우와 몇번이고 충돌해온 죠나산 그레인은, 어렸을 때 자신을 돌봐주지 않았던 어머니 아노아를 증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화인 26화에서 죠나산은 자신이 25화까지 사용해왔던 탑승기인 바론주에 걸터앉은 채, 바론주에 생명력을 빼앗겨 초췌해진 모습의 아노아를 안고 올판 주변을 떠돈다.
그리고 유우의 설득으로 움직임을 멈춘 올판의 빛을 바라보며, 그는 아노아에게 혼잣말을 하듯 말을 건다.

"보라구, 마망. 올판의 빛은 따뜻해. 우리들의 힘을, 우리들이 해온 것을 인정해주고 있는(認めてくれている) 따뜻함이야."

이 죠나산의 대사는 등장인물 전원을 긍정하는 『브레인 파워드』의 기본 정신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작품에 있어서 몇몇 인물의 방식, 행동은 부정된 적도 있었지만, 각각의 존재 자체는 최종적으로 긍정되었다. 마지막에 죠나산은, 자신과 아노아를 동시에 긍정할 수 있었다. 탑승자를 구속한다면서 브레인 파워드와 대비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던 그랜쳐는, '외로움을 타는 것일 뿐'이라면서 긍정된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의 의지도 신념도 부정되지 않는다. 올판의 빛에 포용되어, 모든 이는 긍정된다.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한 미래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브레인 파워드』는 종료한다.






7.『창세기전 3 파트 2』의 재평가



『창세기전 3 파트 2』(이하 파트 2)의 스토리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목소리가 컸던 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부정했다' 라는 비판이었다.
파트 2에서 지금까지 줄곧 타도의 대상이었던 베라모드는 실은 전작의 히로인이 되살아난 존재였으며 세계의 유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인물이었다. 창세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들과 흑태자, 시라노, 철가면, 살라딘 등의 인물들의 행동도 앙그라마이뉴를 통해 세계를 순환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세워진 계획하의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창세기외전 2 템페스트』의 주인공으로서, 히로인과 에밀리오의 희생을 딛고 세라프를 얻은 뒤 앙그라마이뉴와 베라모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창세기전 3』의 엔딩에서 세라프째 앙그라마이뉴에 먹혀버린 샤른호스트=클라우제비츠=철가면은 완전히 헛수고만 한 것이다. 거대한 계획, 아니 음모를 눈치채지 못한 채 죠안을 잃고 복수귀가 되어버린 크리스티앙은 개죽음을 한 것이다. 제작자는 이미 완결되었던 스토리를 우려먹기 위해 설정을 갖다 붙이고 뒤집어 엎어, 기존 작품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잊으라고 강요한다.
...라는 것이, 파트 2의 스토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개인에 따라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제각각이지만, 그럭저럭 공감대를 얻고 있고 설득력 있는 논리에 의한 비판은 이런 것이 주류이다.
이는 분명, 적합한 지적이다. 파트 2가 아슈레이, 크리스티앙, 데미안이 차례차례 쓰러진 후 베라모드가 모든 것을 ㅤㄲㅒㅤ닫고 계획을 성공시키겠다는 결의를, 혹은 미래에 대한 굳은 신념과 희망을 가슴에 새긴 채 출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런 비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파트 2에는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 존재한다. 창세기전의 세계와 그 속의 인물들을 부정하고 잊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 긍정하고 희망을 갖으라는 메시지가 있다. 그들을 믿어왔던 것을 보상하는, 따뜻한 독백이다.

이런 식의 '숨겨진 거대한 음모' '조종당한, 혹은 유도당한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들 중, 이런 식으로 보완을 해주는 것은 보기 힘들다.
GPM을 보자. 이 게임은 본래 게임 자체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수많은 숨겨진 설정이 존재한다. 등장인물이 게임 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한 과거를 갖고 있다거나, 그 행동이 모조리 거짓말, 혹은 연기였다는 등 게임 내의 세계를 뒤집어 놓는 설정이 수두룩하다. 등장인물은 물론 플레이어조차 거대한 음모에 빠져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플레이어가 분쇄했다고 생각했던 음모조차 다른 음모의 계획하의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기분 나쁜 일이다.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캐릭터의 감동적인 대사가, 실은 거짓말이었다면(그것도, 게임 본편에서는 알 수 없었다면) 당연히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한 사과는, GPM 본편은 물론, 숨겨진 설정이나 제작자의 말에도 없다.
등장인물과 플레이어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음모를 꾸미고 계획을 세운 세력(혹은 제작자)과는 무관계로 훌륭하게 싸웠다고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오직 플레이어측이 무리해서 혼자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려 자기위안을 할 뿐이다.
하지만 파트 2에서는, 발언자와 제작자 양측의 세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말이 게임의 마지막에 삽입되어 있다. 비록 그 전까지는 언짢은 기분이 가졌을 지라도, 이 마지막 독백을 제대로 듣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면 파트 2가 '全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全긍정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비록, 처음에도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것이 무척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그 동안의 세계를 이끌어 온 건,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닌

생명이라는 가장 순수한 본능.

태고적부터 이어져내려온, 변치않는 삶을 향한 황금 같은 의지.

불완전한 존재들은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결합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새로이 생겨나는 몇몇 오차들.

그것은 곧 삶으로의 욕구... 진화...



난 또다시 새로운 내가 되고, 새로운 나는 보다 더 새로운 나로 진화해갑니다.

삶으로의 꿈은 언제나 쉽게 좌절당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비로소 진화로 탈바꿈할 수 있지요.

죽음과 탄생이란 서로 마주볼 수 없는 두 면이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나란히 달리다 결국 하나로 이어지기 위해...



내가 살고, 세계가 살고...

모든 게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무한한 삶의 궤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제야, 겨우...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불완전한 나를 채워준 당신의 존재...

당신과의 만남 그 자체가, 삶을 향한 나의 의지며,

삶을 위한 나의 진화입니다.



그 때문에 돌고도는 세계라 해도 그 안에서 늘 변화하는 미지 속 진화가 있기에

이 모든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만큼

내가 다시 당신에게 돌려줄 차례가 오겠죠.

그때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당신에게 말하겠어요.

물론, 그때의 난, 그 의미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진화하는 나의 일부는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가슴 아프게 실감하고 있겠죠.



그러니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궤도가 달라져도, 결국 돌고 도는 세계라면...

분명 당신과 재회할 수 있겠죠.

이름도 모르는... 어느 장소... 어느 때에...






이 것이, 에필로그에서 흐르는 베라모드의 독백의 전문이다.
그럼, 이 독백의 내용을 분석해보기로 하자.




그 동안의 세계를 이끌어 온 건,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닌
생명이라는 가장 순수한 본능.
태고적부터 이어져내려온, 변치않는 삶을 향한 황금 같은 의지.
불완전한 존재들은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결합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새로이 생겨나는 몇몇 오차율.
그것은 곧 삶으로의 욕구... 진화...



이 작품의 주제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부분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차율'이란 단어는 창세기전 3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즈가 처음 언급한 적이 있으며, 파트 2에서는 죠안이 "제 9차 아수라 프로젝트, 오차율 1.5% 수정완료"이라고 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차율이라고 하면,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파트 2의 본편 내에서도 오차율은 아수라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즉 정해져있는 올바른 미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수정해야되는 부분처럼 묘사되고 있다. '오차'에 속하는 사람들은, 세계 전체를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흐름인 아수라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베라모드는 오차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오차율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삶으로의 욕구이며, 진화인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친 그 의지와 노력이, 오차를 발생시켜 왔다고 베라모드는 말하고 있다.
창세기전의 인물들은, 긴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뫼비우스의 띠를 이어야하는 자들의 방해가 되는 존재, 이물질이 아닌 것이다.
또한, 베라모드는 이런 삶의 욕구가 세계를 유지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비롯한, 아수라 프로젝트의 '신'들이 아니라, 이런 오차를 만들면서까지 살아가려 한 모든 인간들의 의지가 세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진화로 이어진다.

이런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주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부기팝 위키드~엠브리오 염생』에서는 사람들의 의지가 최종적인 목표 달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할 뿐이며, 『AIR』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길을 걸은 인생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파트 2는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모든 존재로 인해 생겨난 모든 불확정요소를 긍정한다.
윤회 속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긍정하는 것이다. 어떤 안타까운 일도, 어떤 슬픈 일도 모두 삶을 향한 의지, 사랑을 향한 의지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기에 가치가 있다.

흑태자=GS가 팬드래건과 게이시르 제국 사이에서 고뇌하고, 세계를 구한 뒤에도 이올린에게 죽임을 당한 것.
철가면=샤른호스트=클라우제비츠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앙그라마이뉴를 막기위해 동분서주하며 사피 알딘까지 죽이는 등 계속 헛돌다가 결국 앙그라마이뉴에 돌격해버린 것.
버몬트가 형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잔인한 성격이 되어, 반대파를 숙청하고 바이올라를 버리고, 투르를 침공해 세라자드를 상처입혔던 것.
크리스티앙이 죠안을 잃고, 복수에 눈이 멀어 베라모드를 쫓다가 결국은 형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던 것.
증오에 휩싸인 삶을 살아왔던 아슈레이가 끝없이 베라모드와 데미안을 방해하고 결국 데미안까지 끌어들인 채 죽었던 것.
안타리아와 아르케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실패한 삶, 그리고 비극적인 삶.

이 모든 일들은 삶을 향한 황금 같은 의지에 의해 행해진 일이었기 때문에 서로 통한다. 원효 사상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해왔던 그들의 삶은 궁극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진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서로를 보안하기 위해 사랑하려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해온 모든 것은 긍정될 수 있다.
우주 규모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도, 그들은 피와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려 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최상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왔고, 이는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베라모드는, 여기서 그들의 눈물을 긍정하며, 그 삶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난 또다시 새로운 내가 되고, 새로운 나는 보다 더 새로운 나로 진화해갑니다.
삶으로의 꿈은 언제나 쉽게 좌절당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비로소 진화로 탈바꿈할 수 있지요.
죽음과 탄생이란 서로 마주볼 수 없는 두 면이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나란히 달리다 결국 하나로 이어지기 위해...
내가 살고, 세계가 살고...
모든 게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무한한 삶의 궤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제야, 겨우...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요...
불완전한 나를 채워준 당신의 존재...
당신과의 만남 그 자체가, 삶을 향한 나의 의지며,
삶을 위한 나의 진화입니다.
그 때문에 돌고도는 세계라 해도 그 안에서 늘 변화하는 미지 속 진화가 있기에
이 모든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순환하는 세계, 반복되는 시간. 즉 '루프'라는 개념은 꾸준히 사용되어 왔던 소재이며, 반복되는 것을 사건만으로 한정한다면 이를 소재로 사용한 작품은 더욱 늘어난다. 이 루프라는 개념은 게임이라는 표현방식과 매체의 특성상 상성이 좋은데, 그 좋은 예가 GPM이다. GPM은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해야하는 이유를, 세계를 구하기 위한 시도와 수련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루프가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파트 2는 이 독백에서, 2가지 이유를 들며 루프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루프 속에서도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의 의지이며, 두 번째가 바로 '진화'이다.
안타리아와 아르케는 결국 멸망할 운명이다. 멸망하기 전에,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앙그라마이뉴에 빨려들어가 그 인생을 마치게 된다. 새로운 세계가 탄생해도 그 세계는 마찬가지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다.

'나'는 다음 번에는 '새로운 나'가 되며, 이는 '보다 더 새로운 나'로 진화한다. 순환되는 세계이지만, 그 안에는 진화가 있다.
삶을 향한 의지와 욕구로 인해 끊임없이 오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그 과정은 언제나 변화한다. 최상의 미래를 얻기 위해 노력해온 그들의 의지는, 어느순간 분명 결실을 이루었을 것이다.
흑태자나 이올린, 클라우제비츠, 버몬트, 사피 알딘이 성군으로서 태평성대를 만드는 일 또한 있을 수 있다. 알바티니는 크리스티나를, 엘핀스톤은 버몬트를 보좌하며 유능한 신하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다. 기쉬네나 슈리 같은 창세전쟁의 영웅들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시라노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결말이 있었을 것이며, 바이올라나 얀 지슈카에게도 또다른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앙과 죠안도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다. 살라딘과 세라자드는, 엔딩의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시대에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주 먼 훗날에는, 이 '루프'를 '돌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비극적인 순환이 이제는 멈추도록 멸망의 위기에서 세상을 구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세계를 구하려는 모든 이들의 의지가 잘 이어지고 겹쳐지면, 그 이전의 그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골'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흑태자, 이올린, 라시드, 시라노, 메디치, 프레데릭, 크리스티나, 철가면, 엘리자베스, 살라딘, 세라자드, 얀 지슈카, 버몬트, 바이올라, 크리스티앙, 죠안, 알바티니 등이 힘을 모아, 혹은 베라모드, 엠블라, 데미안, 란, 루시엔, 아셀라스, 카를로스, 루크 랜서드, 레드헤드, 아슈레이 등이 힘을 모아 세계를 구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처럼, 무한한 궤도 속에서도 분명 변화하는 것은 있다.
변화가 있을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수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앙그라 마이뉴를 만들어 다른 이의 혼을 흡수한다.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 될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종말보다는, 미래가 있는 종말을 택한다.



이제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만큼
내가 다시 당신에게 돌려줄 차례가 오겠죠.
그때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당신에게 말하겠어요.
물론, 그때의 난, 그 의미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 진화하는 나의 일부는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가슴 아프게 실감하고 있겠죠.
그러니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궤도가 달라져도, 결국 돌고 도는 세계라면...
분명 당신과 재회할 수 있겠죠.
이름도 모르는... 어느 장소... 어느 때에...



진화를 믿고 있기 때문에, 베라모드는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살아갈 것을 다짐할 수 있다. 삶과 사랑을 위해 노력했던 살라딘의 의지를 받아, 그가 자신에게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도 주기 위해서.
'세라자드'는 '베라모드'를 모르겠지만, 재회와 돌파를 기원하는 그녀의 일부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데미안이나 엠블라 등도,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보냈을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창세기전 3 파트 2』는, 기존 창세기전 시리즈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의 시리즈를 전부 망가뜨릴 수 있는 소재를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이를 보완해주는 독백을 남김으로서 문제점을 클리어하고 있다.
『창세기전 3 파트 2』는 창세전쟁의 비록을 잊으라고는 한마디도 하고 있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등장인물들이 헛수고를 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고귀한 인간의 본능인 삶으로의 욕구, 그리고 사랑으로의 욕구로 인한 것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기에, 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모두 긍정된다. 또한, 루프를 지속시켜야 되는 이유를 '진화'에 대한 믿음으로 설명하면서, 이런 형태의 엔딩을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창세기전 3 파트 2』는 긴 시리즈의 끝을, 기존 시리즈를 포함하면서 한단계 더 나아간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었다. 이런 방식으로 시리즈의 완결편을 내놓는 건, 일본 게임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챕터 '크로스 인카운터'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한 거대한 트릭을 비롯해, 『창세기전 3 파트 2』는 외국 게임과 비교해보아도 톱클래스에 해당하는 '얘기할 만한 거리가 많은' 스토리의 게임이었다. 철학 사상이나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등과 비교한 것은, 이 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치중한 리뷰어들과 본래 이를 평가해야 할 일본 게임(특히 AVG)과 애니메이션 팬들의 외면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 연출상의 실패에 의해, 『창세기전 3 파트 2』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묻힌 작품이 되어버렸다. 외국산의 몇몇 게임의 경우는 열성적인 팬들의 선전을 통하여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스토리의 심오함에 대해 얘기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창세기전 3 파트 2』는 너무 과소평가되어있다. 창세기전 시리즈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팬층에 의해 아직도 동인행사 등에서 그 인기는 확인할 수 있지만, 점점 소프트맥스의 신작 온라인 게임인 『테일즈위버』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이기에, 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개인적으로 『창세기전 3 파트 2』를 플레이했을 때, 한국 게임의 미래를 보았다. 외국의 게임에도 뒤지지 않는 스토리의 게임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이었던 『마그나카르타』는 비록 시스템도 대본도 수준 이하의 완성도였지만, 그 스토리 전개는 더욱 발전되었다고 느꼈다. 소프트맥스의 다음 패키지게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흐름을 이어 훌륭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덧글

  • 진진 2006/01/02 18:16 # 답글

    저는 파트2를 처음 깨고 나서 오차율에 대해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것처럼 '틀린' '수정되어야하는' 이런식으로 생각했었고 두번째 클리어를 하니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뭔지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던게 크로이츠님 글을 보니 정확하게 생각나는군요, 감사합니다.

    음, 사람들이 베라모드의 독백을 약간 무시한점이 있었다곤 해도 그들이 약간 불만을 품은건 어느정도 이해가 될만도 합니다. (철가면을 좋아하고 살라딘(파트1의 말이죠)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저도 약간 불만을 품기도 했었습니다만)

    그러고보니 파트2가 출시된뒤 공식게시판을 약 반년정도 드나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싸움도 제 기억상 거의 없었는데다가 사람들이 활발하게 게임상의 내용이나 설정에 대해 열심히 토론했던, 좋았던 기억이 말입니다^^;;
  • 크로이츠 2006/01/03 21:50 # 답글

    진진님/
    캐릭터성이 무척 강한 게임이었으니, 그런 부분에 불만을 갖는 사람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철가면을 좋아했는데다가, 버몬트도 무척 좋아했었기 때문에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가 의미 없어져서 상당히 서글펐었거든요_-_;

    저는 주로 홈페이지와 그 방명록에서 떠들고 있었죠^^; 창세기전3때는 하이텔에서 주로 얘기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 PassBy 2007/02/13 16:20 # 삭제 답글

    음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글 같습니다. 이 글을 누군가가 더 보았으면 좋겠습니다...우리 나라에서 더이상 이런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참 서글프네요. 이 글처럼.. 누군가가 우리의 의지를 이어 감히 하지 못했던 한국 패키지 게임의 맥을 이어갔으면 하네요.
  • Asnael 2007/05/01 01:00 # 삭제 답글

    참 대단하신데요. 이런 장문의 글을..
    특히 부기팝 시리즈하고 연관시킬줄이야.. 저도 그게 집에 있지만 창세기전하고 연관지을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마지막 베라모드의 독백은 그 엔딩의 분위기상 쉽게 묻힐 성질의 것이 아니죠.
    창세기전 시리즈의 핵심적인 요소인 사랑, 형제애, 복수 등이 전부 오차와 진화의 산물이라는것으로써 결정지으니까요.
    참고로 전 저번주에 창세기전3와 파트2를 6번째 클리어했는데 (에디트써서) 베라모드의 독백을 검색어로 쳤다가 왔습니다.
    이글을 보니까 참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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